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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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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5일(화) 17:29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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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 주간문경 | | 둘째 아들이 결혼을 했다. 사돈댁과 아들이 생활하는 곳이 대구여서 자연스럽게 예식도 대구에서 하게 되었다. 원래, 장가는 장인(丈人), 즉 처가(妻家)를 일컫는다. 그래서 남자는 결혼을 하면 처가, 즉 장인의 집에서 혼례를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런데, 식장에서 축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깥사돈과 같이하려 했으나, 사정상 혼자 하게 되었다. 전날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볼펜을 들었다.
사실, 아들의 청첩 전에 어머니의 상례가 있어 경향이 없던 터였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때에 맞춰야 하는 터라 혼례 준비도 무리하지 않게 진행해 왔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일은 길(吉)한 날, 즉 혼례일인 연길(涓吉)을 받기 위한 혼서지(婚書紙)를 쓰는 것이었다. 주위에 서예 하는 이에게 부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혼서는 중요하므로 직접 써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때, 큰아들 결혼 무렵에 장롱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우리 부부의 혼서와 연길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붉고 푸른 비단 보자기에 한지로 접은 봉투 안에 귀하게 보관되어 있던 혼서와 연길에는 아버지와 장인의 자식 사랑이 금방이라도 묻어나는 듯 보였다. 그때 느꼈던 마음은, 삼십여 년을 안해와 살아온 이 바탕이 양가 집안의 노력과 사랑 덕분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아버지는 혼서 말미에 동래후인(東來後人)이라고 적어 두었다. 동래후인은 뿌리이면서 후대로 이어지는 사다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붓글씨 연습을 했다. 붓과 한지 그리고 벼루와 연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서툰 글씨를 써 내려갔다. 어려운 한자 대신에 한글을 택했다. 처음에는 난망(難望)하던 글씨가 조금씩 나아졌다. 함(函)을 보내는 날이 다가왔다. 바로 그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나마 완성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 또한 혼서지 끝 행에 동래후인이라고 적었다. 어쩌면 아들에게 근본인 뿌리를 잊지 말고 앞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축약한 것이리라.
큰아들의 결혼으로 안해와 함께 7년 전에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었다. 이제, 둘째 아들의 결혼으로 곧 온전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다.
살펴보면, 가장 큰 승진은 이처럼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호칭의 변환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장 큰 경사를 혼례로 정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과 함께 남자는 가장(家長)으로 자리하게 된다. 요즘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가장이 상징하는 의미는 적지 않다. 언젠가 지인이 자신의 임명장과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임명장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가장으로 임명하는 증서였다. 그리고 사진은 가장이라는 명패를 앞에 두고 활짝 웃는 얼굴을 찍은 모습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들과 며느리에게 해 줄 말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그리고 인도의 성녀 마더 테레사의 ‘그래도’ 라는 시 구절 중 일부를 적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 (후략)”
삶은 늘 좋지만 않다. 때로는 이기적이 되어 비난하거나 거짓말에 상처를 받아 삶의 무게에 힘들어 하며 좌절할 것이다. 그래도 선한 일을 하고, 그래도 사랑하면 결국 행복할 수밖에 없음이 또 우리의 삶인 것이 분명하다.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 말들을 전하기 위해 안해와 함께 식장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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