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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어디 갔나!

2021년 10월 19일(화) 17:39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지난 가을 서울대학교병원서 정기진료를 받고 나니 저녁 모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오랜만에 의과대학 건너편에 있는 동숭동(東崇洞)의 ‘마로니에공원’에 갔다.

이곳은 옛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정으로서 내가 1957년부터 1962년까지 대학 4년과 군대 1년을 보낸 추억어린 곳이었다. 서울대학이 1975년에 관악산으로 이전한 다음 이곳은 본부 건물 하나만 역사유물로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무실․전시관․극장․상점․식당․회의실 등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교정에 있던 마로니에 나무는 그대로 있고 그동안 더 자라 가을 단풍이 마당에 흩날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의자를 찾아 앉아서 옛 생각에 빠졌다. 동창생과 은사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친구들과 교정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생생했으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두 다 사방으로 흩어지고 아련한 추억으로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강삼숙 작사, 정풍송 작곡, 조영남 노래의 ‘옛 생각’이란 가요가 생각나서 첫 소절을 입속에서 읊조리기 시작하다가 조금씩 밖으로 새어나오다가 뒤에는 아주 꽤 큰소리로 불렀다. 눈에 약간의 눈물까지 흘리면서 다 부르고 나니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60대 부부 세 쌍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남편들이 고교 동창인 그들은 “노래를 잘 부르시는군요! 이 곳과 깊은 인연이 계신가요?”하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여성분의 제안으로 그 노래를 합창으로 불렀다.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댕기 매고놀던 옛친구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 갔나 모두 다 어디 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

노래가 끝나고 보니 공원에 온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큰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세 부부로부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고 이 공원에 자주 오셔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달라는 인사의 말을 들으며 그 곳을 떠났다. 그 날 저녁 모임은 매우 즐겁고 유익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오 회자즉리(會者卽離)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태어나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고, 서로 만나는 자는 곧 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문자화 한 것이다. 긴 인류사에서 이 두 법칙을 벗어난 예외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죽음과 만남의 헤어짐을 너무 서러워하거나 원통해 하지 말고,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것으로 겸허하게 받아드리도록 함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간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보다 덜 슬프고 덜 억울하다고 할 수 있으니, 남은 슬픔과 억울함은 모두 남아있는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보다 먼저 죽고 남보다 먼저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적시(適時) 적소(適所)가 있으니,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공간을 택하여 헤어짐을 행하는 것이 참으로 훌륭한 이별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지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모두 살아있을까? 그리고 현재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내가 사귄 모든 사람을 큰 강당에 모아놓고 술잔을 돌리면서 지난 옛 추억을 나누어 보는 그런 기회를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손발에 힘이 빠질수록 그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이승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우면 저승에 가서라도 그럴 수 있기를 갈망해마지 않는다.

다음에 문경 고향에 가면 흥덕동 깃골 뒷동산에 가서 보다 큰 소리로 ‘옛 생각’을 불러 보고자 한다. 아마 거기서는 박수 쳐주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마음의 감희는 어느 곳보다 클 것이다.

‘모두 다 어디 갔나!’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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