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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淸日戰爭, 1894.7~1895.4) -조공국 조선의 운명(3)

2018년 11월 12일(월) 15:19 [주간문경]

 

16.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7~1895.4) -조공국 조선의 운명(3)

일본이 갑오개혁에서 가장 주력한 것은 일본에 비우호적인 고종과 왕비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기 위해서 일본은 왕권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조선의 권력구조를 내각제(內閣制)로 바꿔 친일 성향의 인물을 내각총리로 앉히고, 경제 구조를 일본에 유리하게 바꿨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고종과 왕비 세력을 무력화 시킬 경우 생길 수 있는 조선 민중들의 반발을 의식해 동학농민군들이 요구한 사회개혁안의 내용들도 갑오개혁안에 포함시킵니다. 즉 일본은 백성들의 요구도 잘 들어준다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왕실과 백성을 이간시키는 것도 일본의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제 1차 갑오개혁의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일본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라는 임시 특별기구를 설치하도록 강요하고(1894.7.27), 왕비 세력을 정권에서 밀어내고 그 대신 대원군을 불러들여 섭정(攝政)을 맡긴 가운데, 영의정(領議政) 김홍집(金弘集)을 군국기무처 총재관으로 앉히고, 박정양, 김윤식, 김가진, 안경수, 유길준 등 17명을 위원으로 참여시켜서 연말까지 약 210건의 개혁안을 제정해 실행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왕 중심의 권력 구조를 내각제로 바꿔 의정부 총리대신 아래 내무, 외무, 탁지, 군무, 법무, 학무, 공무, 농상 등 8개의 아문(衙門)을 두어, 총리와 아문의 대신들이 실권을 갖도록 만들고, 내무아문 산하에는 경무청(警務廳)이라는 강력한 경찰 기관을 설치해 치안 업무를 맡겼습니다. 또 국왕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중국 연호의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일본화폐의 유통을 허용하고 방곡령을 폐지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고 노비제도, 반상문벌, 죄인연좌제 등을 없애도록 했습니다. 즉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침투가 쉽도록 조선의 국가체제를 고친 것입니다. 특히 국방에 관한 개혁이 전혀 없는 것을 보더라도 이 개혁이 조선을 위한 개혁이 아니란 점이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갑오개혁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가운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이루어진 일인데, 청일전쟁(淸日戰爭) 또한 이 와중에 시작됐습니다.
1894년 7월 25일 일본군이 아산만의 청나라 군대를 기습적으로 선제공격해 청일전쟁이 시작됐습니다. 1,200여명을 실은 청나라 함정이 침몰돼 모두 사망했고, 이어 성환(成歡)전투(7.28), 평양(平壤)전투(9.15)에서도 이긴 일본군은 압록강을 건너 랴오둥(遼東)반도로 진격해 뤼순(旅順)을 장악하고(11.21), 산둥(山東)반도의 웨이하이웨이(威海衛)를 점령하고 북양함대(北洋艦隊)를 모두 전멸시켜(1895. 1.20~2.12) 마침내 청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홍장이 수십 년 동안 애써 육성했던 북양함대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모두 수장됐습니다. 이렇게 랴오둥 반도와 산둥 반도로 진격한 일본군은 수도 베이징을 향해 방향을 잡았으나(1895.3),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의 중재를 받아들여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下關)조약>을 맺습니다.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국"임을 밝힌 이 조약은 조선이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屬國)이 아님을 표현하는 다른 형식의 말이었고, 결국 일본이 조선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을 청나라가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밖에도 청으로부터 랴오둥반도와 타이완(臺灣), 그리고 펑후(膨湖)제도를 넘겨받았습니다. 일본은 또 이때 청나라에 속한 댜오위다오(釣漁島)를 무주지(無住地)로 설정해 자기 영토로 만들고 센가쿠(尖角)열도라고 작명했습니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이 섬의 영유권을 놓고 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이 청일전쟁에서 청나라 군사는 35,000명 정도가 전사했고, 일본군은 1,100여명이 전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일본은 이 전쟁 과정인 1894.11.21 뤼순항을 함락시킨 뒤, 남아있던 주민 수천명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청일전쟁이 작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독도 등 동북아시아의 영토 분쟁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제가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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