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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이후의 세계

2018년 11월 12일(월) 15:14 [주간문경]

 

11. 아편전쟁 이후의 세계

작년(2015) 10월 영국 방문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하면서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100년 동안 사회적 불안(不安)과 외세의 침략(侵略), 전쟁의 고통(苦痛)을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외교적 표현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재앙이며 혼란이고 난리(亂離)였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 당시 동.서양의 정세를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인도양 항로가 개척되고 난 뒤 1500년대 중엽부터 본격화된 유럽의 동양 진출은 동양의 특산물 - 각종 향신료, 비단, 도자기, 차 -을 유럽에 판매해서 이익을 취하는 중개(仲介)무역 정도로 진행됐지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자유무역이 중시되는 자본주의 이념이 확립되자 동양은 단순한 중개무역의 대상이 아니라 유럽의 원료 공급지이자 상품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유럽 강국들은 상품시장 개척을 위한 크고 작은 무력을 행사했는데, 중국을 상대로 한 아편전쟁도 그 중의 하나였지요. 그래서 영국 의회 내 소수파들은 "아편을 팔아 무역 적자를 메우려는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반대했지만, 의회 내 다수파와 여왕 등은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영원한 존속과 발전'을 위해 아편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바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아편전쟁 전인 1825년에 벌써 상품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역사상 최초의 경제공황(Economic Crisis)을 경험하기도 했고, 크림전쟁이 끝난 뒤인 1857년에도 공황을 겪습니다. 이러한 영국에게 중국이라는 시장은 엄청난 유혹이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인구 3~4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갖고 있는 대국이었으니까요.
또 유럽 강국들은 19세기 중반 쯤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 분배(分配)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땅인 극동(Far East)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유럽 세력은 자신의 지역에서의 거리를 따져 아시아를 근동(近東, Near East), 극동(極東, Far East) 등으로 나누다가 그 중간 지역은 중동(中東, Middle East)라고 부른 것은 아시지요?) 즉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유럽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영향권으로 편입해 상품을 판매하고 또 싼 값에 원료를 획득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중국, 일본, 한국 등이 남게 됐습니다. 중국은 1840~1842, 1856~1860 등 두 차례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가 일으킨 침략전쟁에 패배해 개항을 해야 했고, 일본은 1854년 미국으로부터 개항을 강요당하는 등(미국에 강제 개항당한 일본은 22년 뒤인 1876년 강제로 朝鮮(한국)의 문을 엽니다), 바야흐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나라는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청 나라가 18세기 후반(1780년 정도)부터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섰는데도, 중화사상에 입각한 쇄국을 계속하다 아편전쟁에 지고서도 깨닫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청나라의 비참한 패배는 이웃 일본과 조선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대한 중국이 '서양 오랑캐'에게 한 번도 아니라 연짱 패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좀 늦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청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대로는 안되고, 서양 특히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안타깝게도 朝鮮(한국)은 여기에서도 한 걸음 뒤지게 됩니다) 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뒤 청 왕조의 위신이 추락하고 전쟁 배상금 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배경이 되어 "부패한 만주족의 나라(淸)를 타도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납니다. 3년 만에 태평천국(太平天國)은 난징(南京)을 수도로 정하고(1853) 인근 17개 성(省) 800여개 도시를 점령해 50만 명의 군대를 규합하는 등 위용을 떨쳤으나 끝내는 한(漢)족 의용군과 외국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청 조정은 외국의 과학기술 특히 무기의 우수성에 눈뜨고, 이를 배우고자 합니다. 양무운동(洋務運動, 1862~1895)이 시작됐습니다. 서양의 근대기술을 받아들여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진하자는 이 운동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을 원칙으로 하는 바람에 별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중국의 정신을 지킨다"면서 제도상의 변화는 그냥 두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이는 변화는 사실 성공하기가 어렵지요. 기술이 들어오면 그 기술을 성공시킨 정신도 따라 들어오는데, 그걸 나누어서 받아 드리려고 했으니, 성과가 없을 수 밖에요. 이 양무운동은 청일(淸日)전쟁과 청불(淸佛)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면서 끝이 납니다.
반면 일본은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인 페리(Perry)제독의 강요로 인한 개국(1854, 美日和親條約)에 이어, 내전을 거쳐 막부(幕府)를 폐지(1866)하고, 왕정복고(大政奉還, 1867)로 이어지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성공합니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와 세금, 군사제도 등을 개혁하고, 신분제를 폐지하는 등 일련의 사회개혁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경제는 자본주의를, 정치는 입헌정치를, 사회는 근대화를,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를 따르게 됩니다. 황제(皇帝)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만 받아드리려는 청나라와 막부를 폐지하고 유명무실했던 천황(天皇)을 실권자로 복귀시켜 국가발전을 도모한 일본과의 차이는 곧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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