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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나라는 왜 망했는가?

청나라의 해금정책(海禁政策)

2018년 11월 12일(월) 15:05 [주간문경]

 

<첫째 이야기>
청(淸)나라는 왜 망했는가?

2.청나라의 해금정책(海禁政策)

청나라의 국력이 만천하에 공개된 아편전쟁이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관계로 우리는 유럽 가운데서도 영국의 부상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제는 아시아로 좁혀서 청나라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알다시피 청나라는 1616년 여진족(만주족) 누르하치가 후금(後金)이라는 이름으로 건국해서 그 아들(청 태종)이 청(淸)으로 나라 이름을 바꿔, 1912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했습니다. 건국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 인조 무렵입니다. 중국은 그 많은 민족, 넓은 땅 도처에서 나라가 세워지고 망하고 해서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전문가들은 대개 200~300년 주기로 주요 왕조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중국 왕조 교체의 공식은 대략 "어느 한 왕조의 후기에 오면 부패나 모순이 심해져서, 반란이나 내전이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신흥세력이 등장하고, 정권(왕조)이 교체되면, 그 새 왕조는 개혁정책을 펴고, 좋은 시절이 한 동안 계속되다가, 부정부패나 환관의 발호 등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경제 위기가 겹치면서, 국민들이 참기 힘들어지면, 그 불만을 이용해 또 다시 반란이나 내전이 발생하고, 이를 기화로 이민족이 침입하거나 신흥세력이 등장해 새 나라가 건설되는 코스를 밟아 왔다"고 말합니다.
청나라는 누르하치부터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까지 296년 동안 12명의 황제가 집권했는데, 1616년부터 1661년까지는 성장기, 그리고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명이 집권했던 1661년부터 1795년까지는 전성기, 그리고 1796년부터 1912년까지 6명이 집권했던 때는 쇠퇴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건륭제 당시 중국은 인구 3억명을 돌파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국토 면적도 1,470만㎢로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엄청난 중국의 국토면적은 960만㎢로 세계4위이지만, 청나라 때는 지금의 1.5배였습니다.
그러나 최고 전성기라는 건륭제(재위 1735~1795)때 10차례에 걸친 영토 확장 전쟁 등으로 국고는 고갈돼 가고 있었고 부정부패가 극심했으며, 굶는 백성이 속출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곪아 들어가는"시기였다고 하겠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1780년 건륭제 70세 생일에 맞춰 조선 정부가 파견한 축하사절단의 일원이었던 박지원이 그 여정을 기록한 것이지요.
청나라가 건국될 무렵 서양(유럽)에서는 신대륙에서 재배․채취된 상품이나 원료 등이 대규모로 거래․유통되는 상업혁명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특히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델란드 등은 신대륙에서 채취한 금과 은, 특히 은을 매개로 해서 활발한 교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사에서 <대항해시대>라고 부르는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중반까지 바다에서 일어난 큰 일 가운데에는 콜롬버스(1451~1506, 이탈리아 출생이나 스페인의 후원으로 신대륙 발견), 바스코 다 가마(1469~1524, 포르투갈), 마젤란(1480~1521, 포르투갈 태생의 스페인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1~1512,이탈리아) 외에도 중국 명(明)나라 때의 환관 정화(鄭和, 1371~1433)의 7차례에 걸친 대항해(1405~1433)도 반드시 거론됩니다.
정화는 오히려 이들보다 훨씬 앞서서 바다를 탐험했지요.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는 물론 인도, 중동, 아프리카까지 항해했으며, 대항해에 참가한 무역선 가운데 제일 큰 배가 7,800톤 급으로 길이 137m에 너비 56m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타고 간 산타마리아(Santa Maria)호가 230톤 규모이고,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양 해로 개척 당시에 탔던 4척의 배도 200톤에서 400톤 규모였으니, 엄청나게 큰 배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정화가 죽은 뒤 이런 무역선(보물을 많이 실어서 보선(寶船)이라고 불렸습니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고, 항해 기록도 모두 불태워지면서 해금령(海禁令)도 철저해지고, 해상활동이 크게 위축돼 중국은 동남아시아 근해에서만 활동하게 됩니다. 명나라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시작된 해금령이 청나라 때까지 상황에 따라 완화되고 또 강화되고 하면서 중국은 해외와의 관계가 없이 자기들끼리 오랜 기간 잘 지내오는 보수적인 국가 운영에 젖어 있었습니다. 변화하고 노력하는 유럽과 비교해 보면 중국 정부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또 해외에 중국인이 많이 거주할 경우 반란이나 독립의 우려가 있다고 해서 청나라는 자국민에 대해 1년 이상 해외에 거주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군력 혹은 해외 무역이나 자국민의 해외 진출에 대한 억제 정책은 나중에 청나라가 외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면서 땅을 치게 만드는 원인의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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