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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2017년 03월 17일(금) 18:20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같은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 두 개 있으면 새것 보다는 헌것을 먼저 사용하고, 두 가지 음식이 앞에 있을 때는 맛이 없는 것을 먼저 먹는 게 일반적이다. 새것일수록 아끼고자 하는 욕심이 더 많고,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으면 다른 것은 다음에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귀한 것은 깊이 감추어 두고 보통의 것을 대중 앞에 내보이는 게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아프리카 어느 깊은 산속에 눈이 하나만 있는 원숭이들이 모여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눈을 가진 정상적인 원숭이 한 마리가 길을 잃고 이 마을에 와서 하루만 묵어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이 마을 대장은 눈이 둘인 불구자를 재울 수 없다하여 쫓아버리고 말았다.

화폐의 바탕이 되는 금속을 지금(地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지금의 가격이 법정가격보다 낮으면 나쁜 화폐, 곧 악화(惡貨)라 하고, 법정가격과의 차이가 적은 경우에는 좋은 화폐, 곧 양화(良貨)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화폐가 동시에 유통되어지면 사람들은 양화는 집에 두고 악화만 사용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 가운데서도 보관하고 이동하기 쉬운 5만원권이나 가치가 안정되고 세계적으로 유통하기 편리한 달러 또는 유로화는 가능한 한 가정에 깊이 숨겨두고 다른 단위의 화폐를 주로 사용하고 있음이 이를 잘 증좌하고 있다.

영국의 재정가이자 역대 국왕의 재정고문이며 런던에 거래소와 대학을 창립한 그레셤(Sir Thomas Gresham, 1519~1579)은 이러한 속성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로 요약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인 것이다.

천사와 사탄(Satan)이 싸우면 천사가 이기고, 선인과 악인이 다투면 선인이 승리하며 양질과 저질이 경합하면 양질이 우세하고, 정의와 불의가 상대하면 정의가 우선한다. 이것이 바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정도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진리이다. 인류역사와 인간사회에서 반드시, 그리고 항상 그러한가? 나라가 바뀌고 정권이 교체될 때에는 구세력이 물러나고 신세력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 충(忠)과 역(逆)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지게 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할 때, 고려 삼은(三隱) 및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과 정도전(鄭道傳)․배극렴(裵克廉) 등, 조선조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왕위찬탈 시의 사육신․생육신과 한명회(韓明澮)․신숙주(申叔舟) 등, 일제 강점기의 김구(金九)․안중근(安重根)과 이완용(李完用) 등 오적(五賊)이 그 예들이다.

악화가 모든 양화를 다 구축하고, 악질들이 양질을 모두 몰아내며, 불의가 정의를 완전히 소멸시킨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이런 현상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그 세상은 아마 악마가 지배하는 지옥이 될 것이다.

악화와 악질과 불의가 우세하는 세상은 한시적이고 국지적이지 영원하지 않다. 법률과 도덕과 종교가 강조되고 준수되는 이유가 바로 양화와 양질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소망에 있는 것이다.

양질의 사람들이 양화를 가지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자 한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난 예외적 현상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고 있다. 착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에 직면하며 때로는 젊은 나이로 일찍 죽는가 하면 저질의 악한 사람이 승승장구로 발전하고 부자가 되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는 경우를 보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가치기준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힘이 승패를 가르고 승자가 정의의 기치를 차지하면 인간사회에 정도가 확립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의가 주인인 곳에서 정의는 그의 종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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