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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증후군

2010년 03월 04일(목) 07:23 [주간문경]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설날에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올리는 것이 우리네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 전해 내려왔는데,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그 아름다운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은 색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핵가족 사회가 자리 잡으면서 전통적 가족중심은 무참히 무너지고 끈끈한 혈육간의 정마저 얇아진지 오래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벌어먹기 위하여 총성(銃聲)없는 생활전선을 따라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부모슬하를 떠난 자식 중에 한 두 명은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은 만원버스와도 같은 답답함으로 하루하루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고향을 찾는 일은 명절 때나 되어야 길을 나서지만 요새 같이 살기가 팍팍할 때면 그 것 또한 마음이 가볍질 않을 것입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향이지만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는 일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며, 젊은 청년이나 처녀가 뉘 집 자손인지도 마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부모가 인사를 시키거나 본인이 집안 어른의 함자를 이야기를 해야만 “아! 민지댁 손자구만?” 하시고 알아보는 일이 시골에서는 명절 때 보는 또 하나의 풍속도가 되었습니다.

세파에 시달린 고단한 삶 속의 가족들이 올해도 고향을 찾아 혈육을 찾아 동토(凍土)의 추위를 무릅쓰고 설을 맞아 고향의 품속으로 찾아들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에 주부들 스트레스 때문에 이혼이 급증한다는 신문 보도를 작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남자들은 해다 바치는 음식이나 먹으면서 술잔이나 돌리고 화투장이나 만지며 같은 족손(族孫)끼리 희희낙락 하는데도, 정작 단 1촌도 걸리는 것이 없지만 며느리란 직함(?) 때문에 시가(媤家) 조상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야 하는 타성(他姓)의 며느리들은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는 자연히 남편을 통하여 터지고, 그러다 보면 부부싸움이 아닌 남남의 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 참을성과 이해심이 부족한 부부들은 결국에는 갈 때 까지 가고 마는 사건들을 우리는 흔히 보고 있습니다.

시집이 얼마나 미우면 심지어 시자(媤字)가 들어가는 것은 모두가 꼴 보기 싫다고 하는데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시댁을 방문할 때 며느리들은 선물 마련 때문에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한 글을 독자 코너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시댁에 가는 선물에는 아부와 청탁과 아첨의 뇌물이라는 꼬리표가 없는 순수의 정이 듬뿍 담겨 있는 것이면 됩니다. 정(情)!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으로 점철된 오천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옛날 나누던 설 떡국 한 그릇에 강정 몇 조각 감주 한잔 같은 소박한 설이 그립고 정이 그리운 것은 나이 탓일까요?

선물은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르는 것 보다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선물 마련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시어른들 선물은 물건보다도 현찰이 제일 좋다고들 하시니 올 설 선물은 무거운 선물 보다는 가벼운 봉투가 제격이었을 것입니다.

올 해 설에는 며느리도 아들딸들도 모두가 다툼이 없는 역할분담에 최선을 다했고, 온 가족이 즐거웠고 진짜배기 가족 축제의 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아내와 며느리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가족 구성원들의 표정들은 밝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사 아무리 바쁘고 고단해도 큰 명절에 모이는 가족이란 대명제 앞에서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짬을 내어 동기간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 제대로 온 가족이 모여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잠자리가 편하지 않아도 화장실이 복잡해도 가족이란 끈끈한 정은 모든 불편함을 아우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나가야 하는 고향이지만 그래도 동기간의 정과 부모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다음 귀향의 또 하나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제 경인년 새해의 밝은 해님도 벌써 산모롱이 돌아 앞 산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데, 해맞이를 못한 나는 늦은 소원 하나를 빌어 봅니다.

내년에도 동기간이 모두모두 건강하게 볼 수 있기를……. 고맙습니다.

편집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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