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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 읽기(98)-일본의 사과(謝過)는 일본의 수준(水準)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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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11일(화) 17:31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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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받는 입장에서는 뭐든 많이 받을수록 좋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14년의 협상기간 동안 청구권 액수와 독도 영유권을 놓고 시간을 끌었다. 살펴보면 일본은 초기에는 회담을 하면서 망언(妄言: 망령된 발언)도 자주 했다.
한국측이 제시한 청구권 금액은 많을 때는 36억 달러(일제 식민지배 1년에 1억 달러씩)에서 20억 달러 안팎을 거론했다. 일본은 자기들이 남겨놓고 나온 재산이 많다며, 최대 5,000만~8,000만 달러를 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협상이 될 턱이 없었다. 한국측 대표는 “매국노”나 “친일파” 소리 듣기를 두려워 했다. 한일회담이 14년이나 끈 이유다.
참다못한 미국이 “일본이 조선에 남겨놓았다는 재산은 교전국인 미국이 전쟁을 하면서 점령해 압수한 것이다. 승전국 미국은 독립국 한국에게 협정에따라 정당하게 이것들을 다 넘겨주었다. 패전국 일본이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정리함으로써, 일본의 입을 봉해버렸다.
당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8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은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18억 달러였을 때 이야기다. 이제 배상액이 많다 적다, 액수를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쉽게 말해 우리가 못 살 때는 액수를 가지고 말해도 되나, 이제는 그 시기는 지났다.
한일협정의 내용도 그렇고, 배상 등 모든 것이 우리 정부 책임이다. 역대 정부가 배상에 대해 “지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다 끝난 일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정부가 배상하겠습니다.”라고 용기있게 말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북한에 대한 배상 남아있다
우리가 거론하지 않고 있지만, 1965년의 한일협정은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국교정상화 협정이다. 앞으로 일본과 북한이 수교를 하게 되면, 일본은 이런 협정을 또 맺어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국 사이의 기본조약인 셈이다. 이런 절차없이 북한이 도중에 없어지게 되면, 북한을 대신해 우리가 일본과 이 문제를 놓고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일본에 대해 국교정상화를 전제로 300억 달러(39조원) 이상의 배상을 받아야겠다고 비공식적으로 흘리고 있다. 이제 핵을 보유한 북한은 액수를 더 높일 수도 있다. 이에대해 일본은 100억 달러 미만의 배상 운운하고 있다.
북한은 땅이 우리보다 조금 더 넓지만, 인구는 우리 반 정도이다. 해방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북한은 1947년 유엔(UN)에서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동시선거’ 제안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이지만, 인구가 우리 반(半)에 불과한 북한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제안이었다. 우리 제헌국회도 38선 이남 200명, 38선 이북 100명으로 정해서 실시했다. 이론적으로는 북한을 대표할 제헌의원 100명은 아직도 선출되지 않은 셈이다.
식민지 배상은 생각도 않했다
패전국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협정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 당시 미국 영국 등은 식민지 배상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다. 식민지 문제라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은 여러 나라들은 우리보다 독립이 늦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은 즉시 식민지를 내놓아야 했지만, 유럽 나라들은 2차 대전으로 입은 피해도 있어, 식민지를 더 이용[착취]해 전후 복구에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 산업도 식민지와 본국이 분업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독립과 식민본국을 보면, 필리핀(1946.7. 미국), 미얀마(1948.1. 영국), 말레이시아(1957.8. 영국), 싱가포르(1965.8. 말레이시아와 영국), 라오스(1945. 프랑스, 일본 점령), 캄보디아(1949.11. 프랑스), 인도네시아(1945. 네델란드, 일본 점령), 인도와 파키스탄(1947.8. 영국) 등이다.
특히 청불전쟁(1884)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2차 대전때 일본군에 의해 쫒겨난 프랑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들어왔다.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 투쟁(1차)에 밀려 1954년 미국에게 전쟁을 맡기고 철수한다. 우리도 참전했던 그 유명한 베트남전쟁이 미국이 맡은 이후에도 계속됐지만, 끝내 미국도 패배해서 물러났다(2차). 베트남은 1975년 그때 독립과 통일이 완성된다.
이런 형편인데, 미국이나 영국 등이 식민지배에 따른 배상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연합군에 참전했던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4개국만이 일본으로부터 ‘전쟁피해 배상금’을 받았다. 베트남은 일본이 4년 동안 지배할 때 10만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일본이 쌀을 다 뺏어간 때문이다. 3,800만 달러를 받는데 그쳤다.
일본도 강대국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역사는 강대국에 의한 지배의 기록이 가로줄이라면, 피해국의 눈물의 기록은 세로줄이 돼, 하나의 그림판이 완성된다.
일본도 제국주의에 취해 한국과 만주, 중국을 침략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동남아를 짓밟으며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원자폭탄 2발을 맞고는 무조건 항복했다. 패전한 일본은 1945년 8월부터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 4월까지는 연합국[미국]의 군사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연합국들은 일본의 항복조건을 세세하게 가다듬는다.
특히 일본이 19세기 후반 이후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 ‘영토 박탈’이 아주 중요했다. 맥아더 사령관이 일본을 통치하는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청구권[식민지배 배상금]과 독도의 지위에 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1950년 6월부터 나라의 존망을 놓고 북한 공산군과 전쟁을 하고 있어서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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