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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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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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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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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한 소녀를 좋아하는 산골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살던 시절은 늘 배가 고팠고 가난의 굴레가 숙명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먹을거리만 있으면 만사 부러울 것이 없었던 너무도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은 매일 왕복 10km의 학교 길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소년이 좋아하던 소녀의 집은 읍내에서도 가장 크고, 넓은 마당에는 온갖 귀한 화초와 과일 나무가 큰 집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귀한 사과와 석류 등, 과일 나무에는 가지가 째질 정도로 과일이 주렁주렁 메 달려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그리 크지 않은 배나무에는 어른 주먹만한 탐스러운 배가 늘 배고픈 소년을 유혹하였습니다.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포도는 보기만 해도 장대 같은 춤이 목젖을 적시게 하였습니다.
소녀의 집에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마당에는 늘 빗자루 자국이 가지런히 날 정도로 정갈하였으며, 마당가에 있는 펌프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려서 화단에 물을 주셨습니다.
소녀도 할머니를 거들어 화초 가꾸는 법도 배우고 청소도 잘 하는 부지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할머니 곁에는 늘 참 싸리 빗자루가 있었는데, 청소와 지킴의 상징으로 동네 개구쟁이들에게는 무서운 무기였습니다.
개구쟁이들은 호시탐탐 과일을 노리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참싸리 빗자루 때문에, 거사를 얼른 결행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싸리 빗자루에 한 번이라도 응징을 당해 본 아이들은 더욱 겁을 냈습니다.
비 오고 바람 부는 어느 날 소년은 소녀가 보고 싶어 그 소녀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린 대문사이로 바람에 의해 마당에 떨어진 맛있는 배를 발견하고는 할머니의 그 무서운 참 싸리 빗자루 생각을 잊은 체, 소년은 어느새 소녀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에 떨어진 배를 주워 들었습니다. 그 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소년을 전율케 하였습니다.
“야! 할매 있어 얼른 내빼”
화들짝 놀란 소년은 소녀를 돌아다 볼 사이도 없이 돌아서려는데 그만 할머니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마루에 있던 소녀는 방으로 들어갔고 소년은 할머니에게 호된 꾸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소녀는 열린 방문 사이로 소년이 혼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만스럽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 때 그 소녀가 짓는 그 표정의 깊은 의미를 몰랐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른이 된 소년은 어릴 적 배나무가 생각이 나서 소녀의 집을 가보았습니다.
그 큰 기와집은 흔적도 없고 그 많은 화초의 화단이랑 배나무도 온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배나무와 화초들이 있었던 자리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고급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펌프가 있었던 자리는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배나무를 보면 그 때 그 소녀가 생각이 납니다.
아마 소녀도 배나무를 보면 그 소년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억을 다시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백발이 된 소년은 길을 가다가 배나무가 서있으면, 물끄러미 한 참을 추억 하다가 혼자만 아는 웃음을 웃으며 한 번 뒤돌아보면서 길을 갑니다.
지금도 배나무를 보면 소년과 소녀의 소중한 추억이 달려있는 것 같아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곤 합니다. 어린 시절의 맑고 투명한 추억은 먼 훗날 삶의 보약 같은 것이 아닐는지요?
수채화 같은 추억 하나는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이어서, 지금도 세상의 어지러운 일들이 밀려 올 때면 가만히 꺼내어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그 소녀와 배나무를 추억하여 봅니다. 아마 그 소녀도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이 가을 고운 빛깔처럼 곱게 늙어가겠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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