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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의 생애

2022년 07월 05일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김만중(金萬重)이란 사람은 조선조 후기의 관리이자 문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이시다. 그는 제16대 인조(仁祖) 15년인 1637년에 태어나서 제19대 숙종(肅宗) 18년인 1692년에 만 55세로 서거하셨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강화(江華)와 김포(金浦) 사이 강화만의 선상(船上)으로 어릴 때의 아명(兒名)은 ‘선생(船生)’이었다고 한다. 관향은 광산(光山)이었고,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였다.

28세 때인 1665년, 현종(顯宗) 6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敎理)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이어 전적(典籍)․암행어사(暗行御史)․홍문관(弘文館)부수찬(副修撰)․예조참판(禮曹參判)․·공조판서(工曹判書)․대사헌(大司憲)․대제학(大提學) 등의 주요 관직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두 번의 유배생활을 경험했으며, 처음은 평북 선천(宣川)이었고 다음은 경남의 남해(南海)였다. 그가 마지막 운명한 곳도 유배지였던 남해군 노도(櫓島)였다.

이런 바쁜 생애 가운데서도 문학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먼저 한글소설로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집필하였고, 다음에 한자로 된 ‘서포만필(西浦漫筆)’과 ‘선비정경부인행장(先妣貞敬夫人行狀)’, ‘주자대전습유(朱子大全拾遺)’, ‘율곡선생별집(栗谷先生別集)’ 등이 있다.

앞의 두 소설로 인해 그는 우리나라 한글 소설문학의 개척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양반에 의해 쓰여진 최초의 한글 소설인 ‘구운몽’은 효자로 이름 난 김만중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이승의 허무함을 그린 소설로서 숙종 때에 간행되었던 것이다.

역시 숙종 조에 발간된 ‘사씨남정기’는 풍자(諷刺)의 뜻을 가진 목적소설(目的小說)로서 숙종이 장희빈(張禧嬪)에 미혹되어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폐출한 것을 풍자하여 쓴 것이다.

한편 한자로 쓰여진 ‘서포만필’은 53세이던 숙종 16년, 1690년에 남해 유배지에서 탈고한 것으로 2권 2책 269항으로 되어있다.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의심나는 곳을 변석(辯析), 즉 따지어 가리고, 책 끝에 신라(新羅) 이후의 유명한 시를 약평(略評)한 것을 부록으로 실어 놓았다.

좀 더 상술하면, 경학(經學)․역사․문학, 유가(儒家)․불가(佛家)․도가(道家) 등의 종교, 천문․지리․음양․산수(算數)․율려(律呂), 근대과학 등의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중국 및 한국의 역사기술의 고전(古典)에 대해 비판하며, 신라 이후 우리나라 시문(詩文)에 대한 간단히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

사상적으로 보면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일체를 회의(懷疑)했으며 사회현실에 대해 냉엄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더하여 조선문학(朝鮮文學)이 독자적 생명을 지니고 발전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논증하였다. 1690년 유배지에서 탈고한 이 책자는 그의 사후 23년이 지난 숙종 39년인 1713년이 되어서야 경주부(慶州府)에서 정식 발간되었던 것이다.

사후 6년이 지난 숙종 24년인 1698년에 관직이 복구되었고, 다시 8년이 지난 숙종 32년인 1706년에는 그의 생존 때의 효행(孝行)에 대한 정표(旌表)가 내려져서 ‘효자정려비(孝子旌閭碑)’가 세워졌으며, 그 위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儒城區) 전민동(田民洞)에 있는 그의 부친의 묘소 앞이었다.

그의 부친 김익겸(金益兼, 1614~1636)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청군(淸軍)의 침입시 강화도에서 자폭한 충신이었기에 후일 묘소와 함께 ‘충신정려비(忠臣旌閭碑)’가 이곳에 모셔졌기에 그 아들의 정려비도 이곳에 세워졌고 먼 훗날 ‘서포소설비(西浦小說碑)’도 함께 건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귀양가서 소설도 쓰고 마지막 운명도 맞이했던 경남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양아리(良阿里)의 벽련(碧蓮)마을 앞의 조그만한 섬 노도의 바래길 3코스를 ‘구운몽길’이라 이름지었으며, 많은 방문객이 서포 김만중을 생각하며 이 길을 걷고 있다. 사람은 갔어도 그의 글과 흔적은 전국 곳곳에 남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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