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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사지삼층석탑의 비밀

2026년 06월 24일 [주간문경]

 

 

↑↑ 정창식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주간문경

 

도천사지삼층석탑은 늘 화두였다. 우리나라의 석탑은 하나이거나 두 기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도천사(영원사)지에는 같은 모양의 탑 세 기가 나란히 있었다. 이 탑들은 1970년 1월 13일 한국일보 신문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에서 통일신라시대 거탑 3기가 나란히 서있는 전례없는 축탑양식이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석탑들은 모두 무너져 있었으나 그 부재가 그대로 남아있어 복원하면 높이가 8미터나 될 것이라고 한다. 국보급으로 지정될 것으로….“

단국대학교 조사단이 발견한 이곳 삼층석탑에 대한 기사 내용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먼저, "전례없는 축탑양식" 즉, 탑 3기의 존재다. 그리고 "높이가 8미터.…", 그러나 8미터 높이로 추정되었으나 5.3미터로 복원되었다. 복원된 모습에서도 짐작하겠지만 날렵하고 세련된 비례미가 압권이다. 마지막으로 "국보급으로 지정될 것…"이라고 했는데 1976년 실제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이 탑들은 얄궂게도 두 개의 보물번호를 받았다. 현재 직지사 대웅전의 동, 서탑의 보물606호 그리고 비로전 앞의 탑 보물607호가 바로 그 탑들이다.

오래전부터 탑 삼기에 대한 의문은 가슴 한켠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틈날 때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천려(淺慮)한 지식과 불민(不敏)함 때문이다.

최근 최우창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몇 년 전 점촌중학교에서 역사교사로 퇴직하였다. 그리고 ‘디카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기도 하다.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지역에 대한 탑이 대화의 소재가 되었었다. 그때, 궁금했던 도천사지 삼층석탑에 대해 물었다.

”왜 탑 세 개를 만들었을까요?“

선생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평소에 연구해 온 우리 지역의 탑들의 역할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놓았다. 물론, 이는 선생의 가설이며 주장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연구와 권위 있는 학자들의 자문을 거쳐 스스로 결론에 이른 하나의 학설로도 볼 수 있다.

"우리 지역의 탑 도천사지삼층석탑과 최근 돌무더기가 되어 여론이 된 적이 있는 산북면 소야리의 미면사지 석탑 등은 진호사찰(鎭護寺刹)로 보여집니다.“

선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삼국시대에 우리 지역은 신라의 영토였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죽령 동쪽 소백산맥 이남 영덕까지 통치권을 행사할 때도 문경은 고구려에 단 한 번도 지배권을 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에 우리 지역은 경주에서 볼 때 최전방이었다. 그 최전방은 문경의 서쪽 영강을 따라 계립령로가 있었고, 동쪽으로는 금천을 따라 이어지는 적성로가 있었다. 이를 선생은 ‘V’자형 방패로 비유하였다. 이 ‘V’자형 방패는 관문의 역할이었다.

결국 문경은 신라 북진의 창이었고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의 남진을 저지하는 방패였다. 만약, 이러한 지형적 조건의 문경이 없었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선생은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이때 세워진 계립령로와 적성로에 위치한 사찰들은 호국을 위한 진호(鎭護)사찰의 논거가 된다고 했다.

"도천사지삼층석탑은 아마 강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주변에 산성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랬다. 도천사지는 비록 작은 곳이지만 탑 세 기가 당당히 금천을 바라보고 있었고, 현리마을 근품산에는 산성이 있다. 이는 사실이다. 문득,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푸는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좀 더 선생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에 대한 공개를 부탁했다. 조만간, 우리는 우리의 유적과 역사를 우리 눈으로 스스로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듯하다.

그때, 우리는 그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연후(然後)에 우리 문경의 정체성과 문경문화는 더욱 고양될 것이 분명하다.

주간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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