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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14)-감염병과 역사발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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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29일(화) 16:05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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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우한(武漢) 폐렴’으로 불리던 신종 ‘코로나-19’ 환자가 지난 17일 자로 3천만명을 넘어섰다. 이로 인한 사망자도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작년 12월 8일 중국 우한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9개월 만의 기록이다. 아직도 하루 20~30만명씩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 언제 끝날지 다들 걱정하고 있다. 최초 발생지 중국은 철저한 봉쇄 조처로 확산을 막아, 지난 8일 유공자 표창식 등 코로나 종료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면서, 발병 지역이 아닌 듯 딴 짓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으니” 하고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매출감소나 일자리 감소로 고통 받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감염병은 조기 차단이 필수인데, 문재인 행정부가 그 점에서 실수했구나”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지역 국가이지만 조기 차단에 나섰던 홍콩, 베트남, 대만, 몽골 등은 환자 발생 수도 적지만, 사망자도 최소화했다. 홍콩은 4,985명 발생에 102명 사망, 베트남은 1,063명에 35명, 대만은 500명 발생에 7명의 사망자를 냈고, 몽골은 311명 발생에 사망자는 0명으로 모범 방역국이 됐다. 북한은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이상 9월 17일자 통계).
초기 차단한 몽골, 사망자 없어
인류는 여러 가지 감염병에 시달렸지만 끝내 극복(克服)하고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극복의 결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영국 BBC방송은 인류 역사상 5가지의 감염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최초의 감염병은 서기 1350년경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黑死病)이다. ‘림프절 페스트’로 추정되는 14세기의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을 희생시켰다고 하지만, 당시 유럽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었기 때문에, 대략 수천만명이 희생됐다고 추산한다.
이 페스트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생겨나자 소작농이 크게 감소하는 등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경제는 농업 일변도에서 무역과 상업, 금융업 등으로 바뀌고,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기계화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또 페스트가 육지에서 창궐하자 사람들은 장거리 항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먼 바다까지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이 먼 바다 항해는 100여년 뒤 유럽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면서 유럽 제국주의의 바탕이 된다. 다시 말하면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봉건제에 기반을 둔 중세(中世)가 서서히 끝나면서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해외 식민지 개척 등으로 서유럽 국가들이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역설적이지만, 인구의 반 가까이를 희생시킨 페스트(黑死病)를 이겨낸 유럽이 경제, 기술, 군사력 등에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18세기부터는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중국 등 아시아를 마음대로 요리하게 됐다. 지금 중국은 세계 역사에서 중국이 유럽에 뒤진 것은 200년 미만인 최근의 역사이고, 중국은 이번 세기 안에 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국가목표로 돼 있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천연두의 만연도 주목할 만하다. 16세기 초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는 6천만명 정도(당시 세계인구의 10%)가 살고 있었다. 이들 원주민들은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을 따라 들어온 질병-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말라리아, 콜레라, 발진티푸스-에 감염돼 90% 이상이 사망했다. 원주민들의 대량 사망으로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56만㎢)이 숲이나 초원으로 변했고, 식물과 나무가 늘자 지구상 많은 지역에서 기온이 내려갔다. 이로 인해 유럽이 집중적으로 흉작과 기근으로 시달리게 된다.
황열병이 미국을 키웠다
카리브해의 아이티(Haiti)는 처음에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1659년 이후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져 프랑스 땅이 됐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아이티의 유색인종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들어갔고, 나폴레옹은 자신을 ‘아이티의 종신 총독’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했다.
문제는 황열병(黃熱病)이었다. 유럽의 군대는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다. 프랑스 진압군 장교와 사병, 의사, 선원 등 약 5만명이 황열병으로 사망하고 고작 3,000명 정도가 살아서 돌아갔다. 이 패배에 충격을 받은 나폴레옹은 아이티 뿐만 아니라 지금의 미국 땅에 가지고 있던 214만㎢의 땅[프랑스 탐험대는 이 광대한 땅을 당시 국왕 루이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라고 불렀다]을 1803년 미국 정부에 팔고, 아메리카를 떠난다.
미국에서는 이를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이라고 부르며 ‘역사상 가장 현명한 구매’라고 부른다. 214만㎢는 남북한을 다 합친 한반도의 딱 10배 넓이이다. 미국은 1803년 당시 자기 영토의 2배나 되는 이 땅을 1㎢(30만평)에 7$ 꼴인 1,500만$을 주고 구입해 서부개척시대를 열었고, 마침내는 멕시코와 전쟁에서 이겨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을 빼앗고(1848), 러시아로 부터 알라스카를 매입해(1867) 지금의 국토를 이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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