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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許由)와 소부(巢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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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19일(금) 15:52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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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 (주)문경사랑 | | 아주 옛날 중국의 요순시대 때 허유와 소부(또는 소보)라는 초 세속적인 두 고사(高士)가 살고 있었다.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남쪽에 있는 기산(箕山)과 역시 하남성 임영현(臨潁縣)을 지나 안휘성(安徽省)으로 흘러가는 영천(潁川)의 기슭에서 세상을 등지고 초연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요(堯) 임금이 허유를 찾아와 자기 다음에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한 허유는 이런 저속하고 추악한 말을 들은 자기 귀가 더러워졌다고 생각하여 영천에 가서 그 강물로 두 귀를 씻고 또 씻었다. 이 때, 나무 위의 집에서 살고 있는 소부가 소를 몰고 그 강가를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허유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자초지종을 들은 소부는 그런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자기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며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가고 말았다. 고고하고 청아함이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훨씬 후인 은(殷)나라 말기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라는 형제가 있었다. 고죽군(孤竹君)의 아들들인 이들은 기원전 1122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 의해 은나라가 멸망하자 주나라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겨 산서성(山西省) 서남쪽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숨어 살다가 거기서 굶어죽었다. 한 나라에 대한 지극한 충성은 하나의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더 기막힌 일은 성상문(成三問, 1418~1456)의 헌시(獻詩)에 얽힌 이야기다. 조선조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곧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중국에 수차례 다녀왔던 성상문이 한 번은 백이․숙제의 무덤과 비석이 있는 수양산을 지나다가 시조 한 수를 지어 그 묘소에 바쳤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하노라/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는 것가/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그 뉘 따에 낫거니.” 이 시조가 바쳐지자마자 백이․숙제의 묘비에는 식은땀이 촉촉이 스며나왔다고 한다. 성삼문의 그 후 행적을 보면 능히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이․숙제와 같은 충절은 역성혁명이나 전쟁으로 왕조가 바뀌는 경우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자주 나타난 현상이어서 크게 특이할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가 망할 때 숨어 있다가 모두 불에 타 죽은 두문동(杜門洞) 72현이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시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과 생육신 등이 그 좋은 역사적 사례들이다. 그러나 허유와 소부의 처신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자기 나라의 임금, 그것도 성군이라 불리우는 요 임금이 와서 왕위를 양여코자 하는 데, 못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한 사람은 귀를 씻고 또 한 사람은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가는 등의 요란한 형태를 보인 것은 순결성을 지키려는 지나친 결벽증에서 나왔거나 아니면 요 임금 같은 훌륭한 선정을 베풀 자신이 없어서 그런 연극을 연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은 거개의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높은 관직을 준다는 연락이 오기를 귀를 씻고 학수고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살지 않고 산에서 들이나 도시로 나와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요 또한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경우에 따라 백이․숙제의 길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겠지만 허유․소부 같은 의지와 행동은 취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바라옵건데, 백이와 숙제 같은 충신이 나타날 국가의 변고가 일어나서는 안 되며, 어떻게 하던 허유와 소부 같은 훌륭한 현자를 잘 설득하여 국가의 주요 직책을 맡도록 하였으면 한다. 충신이 산 속에서 굶어죽거나 현자가 국정을 외면하고 멀리 숨어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비극적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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