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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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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4일(월) 12:19 [(주)문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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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 (주)문경사랑 | | 교수는 남을 가르쳐 주는 사람, 특히 대학교 선생을 말한다. 그리고 거지는 남에게 빌어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으로, 걸인(乞人) 또는 비렁뱅이라고도 한다. 교수는 그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최고의 지성인이고, 거지는 남으로부터 천대와 동정을 받는 최하의 계층이다. 따라서 교수와 거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이한 위치에 있으며,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이질적 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항간에 ‘교수와 거지가 같은 점 다섯 가지’ 라는 말이 유행되어 왔다. 극(極)과 극은 서로 통한다더니 과연 그러한 것 같다.
교수와 거지가 동일한 것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둘 모두 ‘손에 무엇인가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교수는 강의안이나 자료를 담은 가방이나 봉투를 들고 다니고, 거지는 얻었거나 얻을 음식을 넣을 깡통이나 바가지를 들고 다닌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이들 물건은 모두 그들과 그들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수입과 직결되어 있다는 용도에 있어서도 같다.
두 번째의 유사점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사실이다. 대학 교수는 같은 선생이라도 초․중․고등학교 선생과는 달라서 자기 강의시간에만 학교에 가며, 그 외 시간에는 연구를 하거나 새미나․회의 등에 참석한다. 거지는 남들이 식사하는 시간 조금 뒤에 밥을 얻으려 나가고 배가 고프지 않거나 귀찮으면 출근(?)하지 않으며, 이렇게 나가지 않는 시간에는 다리 밑이나 움막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그래서 교수와 거지의 수입은 시간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세 번째로 비슷한 점은 ‘얻어먹기만 하지 남에게 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거지가 남으로부터 얻어먹고 사는 것은 형편상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걸뱅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고정된 직업과 일정한 수입을 가진 교수가 그렇다는 것은 얼른 이해되지 않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제자들을 위시한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는 습관이 오래되고 보면 남으로부터 얻어먹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체질화되고 만다. 그래서 거지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의 같은 점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거지는 자기를 정상적으로 살게 하지 못한 나라의 통치와 행정에 대해 신날한 비판을 가하고, 저녁에 얻어먹은 집의 반찬이 맛이 없다고 욕을 하지만 그는 이들 말에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고 또 아무도 책임지라고 추궁하지도 않는다. 교수 역시 강의와 연설 및 집필 등에서 빗나간 비판이나 무리한 주장을 하여도 학자의 개인적 소신이라는 명분하에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말의 소리는 매우 높고 거칠다.
끝으로 또 하나 같은 점은 ‘한 번 맛을 드리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거지가 도승지(都承旨)를 불상타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거지팔자는 개팔자다.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이고 한 번 거지는 영원한 거지이다. 교수나 거지가 갖는 특권이나 유익함, 그리고 안전성과 편안함에 습관되어지면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이 무척 힘들게 되는 법이다.
교수나 거지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교수 밖에 못할 사람, 거지 밖에 못할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 교수나 거지는 하늘이 준 천직(天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수를 해서는 안 될 사람, 거지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이들은 조속히 교수나 거지의 직종에서 떠나는 게 좋다. 나는 그 동안 거지와 다른 교수가 되려고 노력했고, 또 교수 이외의 길로 갈뻔한 경우도 몇 번 있었지만 결국 교수로서 정년을 맞이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거지처럼 살아온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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