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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47)-아프가니스탄, 먹고 살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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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31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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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지난 15일, 우리 나라는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解放)된 광복절(光復節)로 기쁨의 날이었다. 우리는 111년전 전 제국주의 일본에 빼았겼던 나라의 주권(主權)을 되찾은 것을 기념해 자축하고 있었는데, 지구 저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집권 정부가 무너지고 이슬람 수니파(派) 무장급진세력인 탈레반(Taliban)이 수도 카불(Kabul)의 대통령궁을 접수하면서 나라를 차지했다. 그 나라의 성격이나 이름이 또 바뀌게 생겼다.
스탄(_stan)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梵語)로 “땅, 나라”를 뜻한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오랫동안 차지했던 터키(돌궐)인들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은 산스크리트어로 ‘동맹부족들의 땅’이라는 뜻의 ‘우파가나스탄’에서 유래한다.
이 땅은 고대에는 박트리아(Bactria), 중세에는 호라산(Khorasan)이라고 불렸고, 중국 역사서에는 대하(大夏)라고 나온다. ‘동맹부족(同盟部族)의 땅’ 답게 아프가니스탄은 남한 6배의 땅에 3,700만명이 살고 있는데, 파슈툰족이 42%로 가장 많고, 타지크족(27%), 하자라족(9%), 우즈베크족(9%), 아이막족(4%), 투르크멘족(3%) 등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다.
1973년 친소(親蘇) 쿠데타, 내란.내전의 시작
산악국가 아프간의 역사는 복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동서양 여러 문화의 통로, 강대국의 군사력과 정치력이 만나는 지점은 개인이나 나라의 삶이 고달프다.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의 끝에 위치한 까닭에 뒤늦은 19세기 말부터 열강들의 식민지 다툼에 고난을 당했지만, 고대로부터 군사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은 알렉산더 대왕, 이슬람제국, 몽골제국, 영국제국 등이 군사적으로 점령하거나 영향력을 크게 행사했다.
19세기 러시아제국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계속 남진(南進)정책을 추진했다. 영국은 러시아와 크림전쟁(1853~1856)을 치루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하면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를 합친)인도제국에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인도 북쪽에 완충역할을 맡을 아프가니스탄왕국을 슬그머니 독립시킨다. 그래서 아프간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하기 전인, 1919년 8월 19일 현재의 위치에 왕국(王國)으로 태어난다.
독립한 아프가니스탄왕국은 2차 대전에도 가담하지 않고 냉전시대에도 중립을 유지하면서 양쪽에서 지원을 받았다. 1973년 국왕이 해외 순방중일 때 국왕의 4촌인 총리(總理)가 소련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됐다. 이후 아프간은 1979~1989년 소련군의 침략, 1989~1996년 군벌 간의 내전, 1996~2001년 탈레반 1차 통치, 2001~2021년 미국 중심의 테러와의 전쟁을 겪었다.
탈레반 “여자가 있을 곳은 부엌과 무덤”
이번에 8월 말까지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은 거의 50년에 걸친 소련과 미국 등 외세의 침략이나 간섭이 없는 나라가 됐다. 탈레반이 곧 2차 통치를 시작할 것이고, 이들은 지난 1차 통치때와 같이 이슬람법(샤리아)에 따라 “여자들이 있을 곳은 부엌과 무덤”을 외치면서 시대착오적인 통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이 앞으로 마주할 문제는 우선 먹고 사는 일과 탈레반의 통치를 피해 발생할 난민문제 그리고 아편 등 마약 생산 통제, 반(反) 탈레반 항쟁 등이 코앞에 닥친 걱정거리이다. 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외국에 대한 테러 활동도 골칫거리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를 당하고 나서 이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위해 아프간을 침공했으나, 그를 사살(2011.5.2.)하고도 10년이나 더 머물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친서방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지원했으나, 희생자만 늘어나고 천문학적인 유지비에 회의를 느껴 철수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는 원조도 소용없다
미국은 1960,70년대 부패한 베트남 정부를 지원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등 연합국들은 군사비를 빼고도 지난 20년간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1,450억 달러(175조원)를 투입했고, 이 가운데 830억 달러(100조원)는 군대와 경찰 훈련에 투입했다.
그러나 부패한 정부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뗀 이유도 이러한 부패한 정부는 원조로 일으키지 못한다는 교훈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년의 전쟁에서 미군은 2,420명이 전사했다. 아프가니스탄측은 탈레반 반군, 정부군, 경찰, 민간인 등 합쳐서 17만명이 사망했고 이 전쟁으로 인한 식량부족이나 위생문제 등으로 36만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또 전쟁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 대도시로 피난한 주민이 290만명이나 된다.
지난 1979~1989년 소련군이 침공했을 때, 소련군은 14,000명이 전사했으나, 아프간 군인, 반군, 민간인 등 아프간측 사망자는 56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집계됐고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기록됐다.
지난 40여년의 전쟁과 내란을 피해 아프간을 떠나 해외에 머물고 있는 난민도 260만명이다. 10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난민 670만명, ‘사회주의 퍼주기 정책’으로 거지가 된 베네수엘라 난민 400만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유엔이나 국제구호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지구촌 곳곳을 떠돌고 있다.
특정 이념을 따르는 정부의 무능과 부정은 이처럼 전쟁을 부르고, 전쟁은 사망자와 피난민을 만들어 낸다. 월남이 그랬고 예멘이 그렇고, 아프가니스탄이 그렇다. 아프간의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비행기에 달러를 가득 싣고 가족과 함께 제일 먼저 도망갔다. 고금을 막론하고 죽어나는 것은 가난과 질병 속에 남겨진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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