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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42)-중국공산당 창건 100년을 맞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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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09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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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중국 공산당(中國共産黨, 中共黨)이 생겨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도 지난 1일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경축대회에서 중산복(中山服)을 입고 나와 “외국세력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누가 이런 망상을 하면 14억 중국 인민들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에 대해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힌다.
중국 대륙은 유일한 집권당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기념하느라, 난리라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세계의 대국(大國)’이라고 교육받고 자란 중국 젊은 세대들의 애국심은 유별나다. 좋게 말하면 조국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지만, 오래전부터 이웃 나라 중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침략을 당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공산당과 관련한 크고 작은 유적지가 300군데가 넘는데, 100년 전 제1차 공산당대회가 열린 상하이의 기념관과 초기 무력 투쟁의 근거지로 대장정의 출발지인 강소성 정강산(井岡山), 종착지인 연안(延安) 등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라는 소식이다.
김정은․문재인, 창당 100주년 축하
북한의 김정은은 7월 1일, 축전과 화환을 보내 중공당 창건 100주년을 축하했다. 김정은은 축전에서 “북한과 중국은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진정한 동지이고 전우”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지난 연초(2021.1.28)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면서 “공산당 성립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진즉에 인사했다. 국내 언론은 사회주의권이 아닌 자유주의 국가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의 연초 축하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열고 출발했다. 창당 당시 중국공산당은 합법이 아니어서(지하당),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상하이 시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당 대회를 가졌다.(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19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수립돼 1932년 일본군이 상하이를 침공하자 항주로 옮기는 등 중국 땅 8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활동했다) 창당 당시의 당원은 53명으로, 당 대회에는 모택동(毛澤東), 진독수(陳獨秀), 이대쇠(李大釗) 등 13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모택동, 창당과 신중국 건국
중국공산당도 처음 생기고부터 국민당(1919년 손문 창당)정부의 단속과 군대에 쫒겨 다니느라, 생일(제1차 당대회)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국민당의 섬멸 작전에 쫓겨 1년간의 대장정(大長征, 1934.10~1935.10) 끝에 연안(延安)에 자리한 뒤인 1938년 모택동이 ‘지구전을 논하다’를 강연하는 도중 “올 해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건립 17주년”이라고 말하면서, 7월 1일이 당 창건일이 됐다. 그러나 그 뒤 학자들이 여러 자료를 조사하면서 살펴보니, 진짜 당 창건일은 7월 23일이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말한 생일(당 창건일)을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까, 7월 1일을 ‘창당기념일’, 그리고 7월 23일은 ‘창당일’로 구별해 기념하고 있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중국공산당의 실용주의(實用主義) 혹은 유연성(柔軟性)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모택동은 중공당을 창당해 부침을 겪으면서도 신중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1949년 10월 1일 북경 천안문 문루(門樓)에서 그는 감격에 겨워 “중국인들이 일어섰다. 다시는 외국에 의해 모욕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 예언대로 돼 간다. 도리어 요사이는 중국이 남의 나라를 모욕주고 있을 정도다. 당 창건 100주년 대회에서 행한 시진핑의 연설도 모 주석의 연설과 맥을 같이 한다. 중국은 청 말기 아편전쟁(1차, 1839~1842) 이후 국토를 빼앗기고 이권을 탈취당한 반(半)식민지 상태에서 신중국을 건국하기까지의 100여년을 치욕의 역사로 보고 있다.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으로 수천만 사망
모택동은 실패도 많이 했다. “근대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만든다” 면서 농업과 공업의 증진을 위해 시작한 대약진운동(1958~1960)으로 총소리 한방 없이 세계 2차 대전의 희생자와 비슷한 4,500만 명을 굶겨 죽였다. 인구가 많아서 그렇지, 엔간한 나라 전체 국민 숫자다.
또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창출한다”면서 문화대혁명(1966~1976)을 지시해 곳곳에서 학살과 가혹행위로 또 수백만명이 사망했고(일부 전문가들 2천만명 주장) 문화재 파괴는 물론 많은 지식인들이 박해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문화대혁명을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권력을 뺏길 위기에 처한 모택동이 어린 학생 등 극좌파를 선동해 일으킨 난리로 ‘10년동란(十年動亂)’이라고 부른다.
우리와 관련해서 모택동은 한국전쟁에 100만명의 지원군을 보내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의 통일(統一)을 막은 것은 우리에게는 크나큰 한(恨)으로 남아있다. 모택동은 학문의 대상으로서 살펴볼 인물이지만 우리나라로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한반도 통일을 방해한 장본인이다. 기성세대들이 어릴 때부터 부르던 <승리의 노래>에 나오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에 나오는 ‘오랑캐의 두목’이 모택동이고 그 후계자가 시진핑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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