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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36)-운하(運河)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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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07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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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계속) 수에즈운하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북쪽(지중해)의 포트 사이드(Port Said)와 남쪽(홍해)의 수에즈(Suez)가 실 같이 이어져 있다. 초기에는 길이 164㎞, 깊이 8m였지만 몇 차례의 확장공사 결과, 현재는 길이 193㎞, 깊이 24m, 폭 200~300m를 유지하고 있다. 선박이 점차 대형화하는데 맞춰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 수에즈운하는 하루 50척 가량이 이용하며, 선박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5만 달러(3억원) 정도의 통행료를 내고, 세계 어느 나라의 선박이나 통행할 수 있다.
지난 3월 23일 발생한 좌초 사고도 길이가 400m인 대형 콘테이너 화물선이 비스듬하게 좌초돼 폭 200m 남짓한 운하를 그대로 막아 버려서 발생했다. 그래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는 속도도 시속 8노트(15㎞)로 제한해, 선박 운행 때 생기는 파도가 양쪽 제방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비스듬히 일주일 동안 누워서 400척 이상의 통행을 막았으니, 사고 선박 회사는 상당한 액수를 물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이집트 운하 당국은 우선 10억달라(1조 1000억원) 정도를 청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4.5).
이집트, 1956년 수에즈운하 국유화
지난번 살펴봤지만, 수에즈운하는 공사비를 댄 프랑스(1869)와 이집트 정부의 지분을 인수한 영국(1875)의 영향력 아래에 쭉 있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집트가 독립(1922)을 했는데도 수에즈운하는 직접 지배했다. 그러나 1952년 이집트의 나세르(1918~1970)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나세르 대통령은 비동맹 중립 노선을 표방하며 소련과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과도 친하게 교류했다. 또 나세르는 아랍, 아프리카, 회교권 등의 3세력의 통합을 기도하며 아랍민족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중심으로 바그다드조약기구를 창설하면서 아랍 세계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의 이야기다.
이집트 정부의 친 사회주의 노선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이집트의 아스완하이댐(Aswan High Dam) 건설에 대한 차관을 중단하자, 그 보복으로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이집트는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해 버렸다(1956.7.26). 군복을 벗은 나세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한달 만이었다.
주식회사인 수에즈운하회사를 국유화해 버리자, 이에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약속을 맺고 1956년 10월 29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운하를 침공한다. 국유화로 영국은 운하회사의 경영권이 날라 갔고, 프랑스는 나세르가 아프리카의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몰래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지원하는 나세르가 못마땅했다. 이것이 <제2차 중동전쟁>이다. 이집트는 이들의 침공을 당해내지는 못했지만, 전쟁 당시 운하에 있던 화물선 40척을 모두 침몰시키는 방법으로 운하의 통행을 막아버렸다.
미국과 소련, 철군 요구
그런데 일주일 뒤 유엔(UN)은 총회를 열고,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군의 수에즈 철군결의안을 낸다. 세계여론이 나쁜데다가 미국과 소련이 한 목소리로 강경하게 요구하니, 이 세 나라는 군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도 유엔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반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이때는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을 편들 경우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전체가 소련 편으로 넘어갈 위험성이 컸다.
문제는 중동의 석유(石油)였다. 석유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미국은 엉망이 되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였다. 소련의 후루시초프 서기장은 “만약 철군을 하지 않으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소련이 이집트와 중동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데, 미국이 침략자를 편들 수는 없었다.
프랑스, 이스라엘, 자체 핵무기 개발
이 짧은 전쟁은 여러 가지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핵무기 공격 위협에 미국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프랑스는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이스라엘도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2천년 만에 재건국한 나라를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핵무기 개발을 비롯해 자주국방과 무기국산화의 길로 나갔고, 영국은 세계 강대국 대열에서 물러나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독일은 독자적인 국방력 강화가 불가능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에 이어 유럽이 힘을 합쳐 ‘제3의 힘’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에 나섰다. 유럽경제공동체는 꾸준히 발전해 이제는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 운하 하나가 세계사의 흐름을 이렇게 바꾸었다. 지금 진행 중인 북한의 핵무기 폐기 문제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동북아시아 역사의 진로를 어떻게 뒤흔들거나 바꿀지 모른다.
수에즈운하는 <2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몇 달간 폐쇄됐으며, 이어 11년 뒤인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8년간이나 폐쇄됐다. 그 뒤 2004년에는 유조선 좌초로 사흘, 2006년에는 모래폭풍으로 8시간, 2017년에는 선박의 고장으로 몇 시간 폐쇄된 데 이어 지난 3월 23일 22만톤급 에버기븐호의 좌초로 일주일간 폐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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