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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91):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42):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 ①

2019년 07월 30일 [주간문경]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두 나라 간 독도문제는 잠복기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사실상 한국의 독도 지배를 인정하고 이 문제를 선반[棚]에 얹어 두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Effective Control)하고 있는데, “그냥 쭉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뒤이은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도 독도와 관련해 일본과 눈에 띄는 다툼은 없었다.

1991년 11월 김성도(1940~2018)씨 부부는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겨서 거주했고, 91년 말에는 독도와 일반 전화도 개통됐다. 독도 문제를 선반[棚] 위에 잘 치워 두었기 때문에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큰 다툼은 생기지 않았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문민정부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나지만 오랜 권위주의 정권이 끝난 뒤 탄생한 김영삼 대통령은 자부심을 가질 만 했다. 그래서 한일 간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태도가 점차 강경해 지기 시작했다. 또 이 무렵 국제 해양질서도 변화한다. 먼저 해양법 관련 변화를 살펴보자.

역사를 보면 콜럼버스(C. Columbus)의 신대륙 발견(1492)이후 국제 질서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항해 기술이나 조선 능력 등 해양력에 따라 강대국도 바뀌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해양 질서는 그대로 계속돼 관습법으로 세계를 규정하고 후발국들은 이 질서를 따라왔다.

쉬운 예로 먼저 배 타고 가서 “발견했다”라고 하는 사람이 그 땅의 임자가 됐다. 수천 년 거기 살고 있던 사람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북미와 중남미 대륙에서 살던 수천만 명의 선주민(先住民)들, 호주에 살던 선주민들(Aborigines 혹은 Indigenous Australian)들은 뭐란 말인가?

호주는 선주민을 인구조사에서 아예 제외하고 ‘토착 동식물’의 한 종류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독도를 다루는 일본과 유럽, 미국 등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유사 이래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于山國)을 형성해 왔으며,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인 서기 512년 신라에 귀순해 온 이래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한국의 관할 아래에 있는 섬이다.

조선 시대 <공도(空島)정책>으로 장시간 비워 둔 사이 일본인들이 몰래 넘어와 채취와 벌목을 했다고 또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했다고 자기들의 ‘고유한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 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소위 유럽 중심의 ‘문명의 역사’는 이럴 경우 ‘자기 땅’이라고 주장을 해도 그것이 통하는 역사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인 행세를 하는 문명인들인데, 주민이 없는 섬을 경영하고 법적으로 편입했으니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자기 땅이라고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 보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떻게 같은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과 문명된 왕조가 이어져온 한국과 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이 점에서 한․일 두 나라의 역사와 논리가 부딪치는 것이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면, 전통적으로 해양에 관한 국제법 질서는 국제관습법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발전돼 왔다.

나라마다 헌법이 다르고 관련 규정이 다른데, 어느 나라 법이 앞선다고, 어떤 규정이 앞선다고 또 우위에 놓여야 한다고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툼이 많이 생겼지만, 이 다툼은 “말로 해서 안 되면 전쟁으로” 해결해 왔다.

이 과정에서 주요 해양 선진국(소위, 유럽 국가들)들의 국내 법령이 국제관습법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두 차례 큰 전쟁[世界大戰]이 끝나고 1945년 국제연합(UN)이 생기고 수많은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세계에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질서가 생겨 나야했고, 해양 분야에서도 이런 규정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유엔은 일찍부터 해양법을 관습법이 아니라 성문법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해양 강국 위주의 국제관습법으로는 다양해진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엔은 1958년 <제1차 해양법회의>를 제네바에서 열었으나 의견을 모으는데 실패하고, 1960년 <제 2차 해양법회의>에서도 선진해양국들과 기타 국가들 간의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

그래서 1973년에 <제3차 해양법 회의>가 소집됐다. 3차 회의는 198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계속돼, 1982년 11월 16일 <유엔해양법협약>이 채택 됐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성된 “바다의 대헌장(大憲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이듬해인 1983년 3월에 서명했지만,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심해저(深海底)개발 관련 조항에 불만을 품고 서명을 거부했다.

해저 3000m 이상의 아주 깊은 바다 밑에 대해서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많은 투자를 통해 개발․탐사를 하고 있는데, 유엔 해양법에서 “심해저는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공동 개발을 하고 선진국들은 기술 이전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해, 여기에 불만을 품고 서명을 거부했다.

현실적으로 선진국들이 빠진 협약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이러한 규정을 완화하는 조정(제 11장; 심해저의 이행에 관한 협약 추가)이 이루어진 뒤, 선진국들이 서명을 하기 시작해, 320조의 본문과 9개의 부속서를 가진 국제 해양법 즉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UNCLOS>은 1994년 11월 16일 부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각국 해양법의 기준이 되는 협약이 탄생하게 됐다. 이 과정에 김영삼 정부(1993.2~1998.2)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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