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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84):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35): ‘윌리엄 시볼드의 개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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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1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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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미국 정부가 초안 작성 과정에서 이렇게 입장을 바꾸게 된 데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소간의 대립 격화 등 국제정세의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일본 정부의 로비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은 패전 직후 설치된 연합국최고사령부 지침에서는 독도를 내놓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작성 과정에서 독도를 되찾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래서 십여 차례의 초안 작성 과정에서 독도가 명기되기도 했고 빠지기도 했다.
앞에서 봤듯이 1949년 3월 19일자 평화조약 1차 초안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리앙쿠르 락스[獨島] 등 이 4개의 섬이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돼 있었다.
리앙쿠르 락스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은 49년 11월 2일 나온 5차 초안까지도 명기돼 있었다. 그런데 1949년 12월 8일에 작성된 6차 초안부터는 리앙쿠르 락스가 빠진다. 6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한국 영토에서 빠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본의 섬[영토]으로 국적 세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5차 초안이 나온 1949년 11월 2일에서 6차 초안이 나온 12월 29일 사이, 두 달이 안 되는 그 기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시볼드’라는 미국 외교관이다. 제6차 초안이 나온 뒤인 1949년 11월 14일, 도쿄 주재 연합국최고사령부 사령관 외교고문인 윌리엄 시볼드가 미 국무부로 전문(電文)과 서한을 발송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이 문제의 인물 윌리엄 시볼드(William J. Sebald, 1901~1980)에 대해서 알아본다. 미국 태생의 시볼드는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1922)하고 일본 주재 미국대사관에 무관으로 근무한다. 그 때 일본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일본계 영국인 여성(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과 결혼한다(1927).
그 뒤 다시 메릴랜드대 법대로 진학해 변호사가 된 뒤, 도쿄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등 일본통으로 활동했다.
연합국이 일본을 점령해 군정을 펴는 동안(1945~1952) 시볼드는 연합국최고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원수의 외교고문, 연합국 대일이사회(Allied Council for Japan, 1945.12 모스크바 외상회의에서 일본의 점령.관리.항복 조항의 보충적인 지령을 집행하는 일에 관해 연합국최고사령관과 협의하고 조언할 목적으로 미.영.중.소 4개국 대표로 구성됨. 1946.4 부터 1952. 4 까지 활동)미국 대표 겸 의장, 그리고 미 국무장관의 일본주재 정치고문 등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였다. 쉽게 말해 시볼드는 일본 주재 미국대사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뒤 시볼드는 버마, 호주 대사,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 등을 지낸다. 우파적인 시각을 가졌던 맥아더 원수의 눈에 들어, 외교관으로 발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에 무한히 호의적인 시볼드는 한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일본의 군정 기간 동안의 경험을 적은 자서전 <일본에서 맥아더와 함께>(With MacArthur in Japan, a Personal History of the Occupation, 1965)를 보면, 시볼드는 “1930년대부터 나는 한국에 여섯 번이나 건너가 보았지만, 받은 인상은 슬프고, 억압받고, 불행하며, 가난하고, 말이 없고, 음울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라고 한국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평화조약 초안에 5차례에 걸쳐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나오자 일본은 초조해졌다. 시간이 없었다. 일본은 시볼드에게 접근했다. 시볼드가 일본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6차 초안이 나오기 전 1949년 11월 14일 시볼드는 독도 조항과 관련해 국무부에 전문을 보내고, 닷새 뒤에는 같은 내용으로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낸다.
“한국 방면에서 일본이 과거에 소유했던 섬들의 처분에 관하여, 독도는 우리가 제안한 제3조에 있어서 일본에 속하는 것으로 명기해 줄 것을 제안합니다. 이 섬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오래되었고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또 그 섬을 한국의 연안 섬으로 간주하기는 어렵습니다. 안보적인 고려 때문에 이 섬에 기상 및 레이더국의 설치를 상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두 가지 즉 “일본의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표현과 안보상 기상관측 기지와 레이더 기지로의 사용 가능성이 거론됐다는 사실이 중요한 관점이 된다.
‘누구누구의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은 ‘누구누구의 주장을 들어 봤더니 그 말이 맞더라’라는 말이고, 러일전쟁(1904~1905) 당시 러시아 해군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망루로 활용하기 위해 급히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했던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정해 주면 러시아와 냉전을 시작하고 있는 미국에게 ‘레이더 기지 등으로 이 섬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일본의 꼬드김이 눈에 보이듯 선하게 떠오른다.
때는 중국 본토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막 수립됐고, 소련은 미국과 거리를 두고 지구 이곳저곳에서 적대적인 세력권[Block]을 굳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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