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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0):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1):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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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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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의 활약 이후인 18세기 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이 만든 모든 공식 지도는 독도(獨島)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표시하거나 ‘조선 영토’라고 표시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안용복의 활약과 이를 계기로 두 나라 사이의 울릉도 쟁계(爭界)가 정리된 관계로(1699년, 양국 문서 교환 등 마무리 됨) 다툴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용복(장군)이 활약하던 때는 명(明)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비켜 달라는 ‘가도입명(假道入明)’의 침략 전쟁인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도 끝난지 100년이 지났고, 그 동안 중단됐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도 다시 일본을 방문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끊었으나, 도요토미(豊臣)를 대신해 들어선 <에도막부>가 국교 재개를 요청해 오자, 조선 정부는 침략을 일으킨 일본의 사정도 살피고 전쟁 때 끌려간 포로들을 데려오기 위해 1607년 국교를 재개하게 되고, 이를 위한 통신사 일행 467명이 선조 40년(1607년)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이 통신사는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1607년 이후의 통신사는 역사에서 <후기(後期)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후기 조선통신사는 1811년(순조 11년)까지 일본을 12번 방문했다. 참고로 <전기(前期) 조선통신사>는 세종2년 1420년 처음 간 뒤 임진왜란이 발발할 때까지 모두 6차례 일본을 방문했고, 다섯 번째 통신사(1590년)의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 1536~ ?, 西人으로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높다’고 판단함)과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 1538~1593, 東人으로서 ‘일본 침략 가능성을 높게 본 서인들의 주장에 의해 민심이 흔들릴 것을 염려해’ 침략의 가능성을 낮다고 보고함)의 정반대 엇갈린 보고가 지금도 망국(亡國)의 상징처럼 또 당파 싸움의 상징처럼 인구에 회자(膾炙:생선회와 구운 고기처럼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림)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나긴 한-일 간의 교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에게 큰 빚을 진 일본이 임진왜란(1592~1598)때 우리를 침략해 큰 피해를 입힌 사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우리 나라를 병탄(倂呑)해 식민지로 삼아서(1910~1945)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우리 한민족에게 끼치고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모습 때문인 것이다. 개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배은망덕한 국가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고대로부터 동북아시아의 문명 전파의 경로로 보면 <중국- 한반도- 일본>의 순서이고, 개항(혹은 개국)의 순서로 보면 <중국(1842)- 일본(1854)- 한반도(1876)> 이렇게 되지만, 개항 이후 국력의 발전은 <일본- 한국- 중국>가 된다. 이건 하계올림픽 개최의 순서이기도 한데, 일본은 1964년(이어서 2020년 개최 예정), 한국은 1988년 중국은 2008년, 이런 순서이다. 21세기 이제 한.중.일 3국의 동북아시아는 또 요동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중국의 G-2 국가로의 부상, 일본의 보통국가화(=전쟁 가능 국가화) 노력 등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자못 궁금해 진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독도의 위치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일본이 1700년대 이후 200년 온전한 정신으로 지도도 제대로 만들고 인접국들과 큰 충돌없이 살아간 시절로 돌아가 보자. 이 시기에 나온 일본 지도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
우선 1779년 나온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다. 이 지도는 미토번[水戶藩]의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가 개인적으로 만든 교통지도(交通地圖)지만, 뒤에 관청에서 허가한 지도가 됐다. 일본 외무성 등 일본 정부와 학계는 이 지도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밝혀주는 가장 확실하고 오래된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 지도상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땅에는 경도와 위도가 그어져 있지만, 이 지도에 나타난 조선 땅은 흰색으로 돼 있으며, 울릉도와 독도도 당연히 흰색으로 돼 있고, 울릉도[竹島]와 독도[松島] 사이에는 1667년에 나온 <은주시청합기>에 쓰여져 있는 문귀[文句]가 기록돼 있다.
즉, <은주시청합기>에서 此二島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隱州 然則日本乾地 以此州爲限矣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고려를 보면 마치 운슈 -雲州, 현 시마네현 동부 이즈모- 에서 온슈 -隱州, 현 오키섬- 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이 주 – 오키섬- 로 한다)라는 문귀에서, 중간 부분인 ‘見高麗如自運州望隱州’라고 적어, 이 두 섬이 조선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는 일본 지도이지만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잘 표시했고, 또 이것이 고려[조선] 땅임을 설명까지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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