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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28): 아시아의 영토분쟁 -카슈미르(Kashmir)지역(5)

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1970년 12월)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은 <서파키스탄> 엘리트들은 동. 서 양쪽에 수상과 정부를 두는 연방제 정부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이미 마음이 멀어진 <동파키스탄>은 독립을 요구했다. 의회 개원 예정일을(1971년3월 25일) 앞두고 <아와미연맹>은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고, 파키스탄 군부는 시위 진압을 구실로 동파키스탄에 군대를 투입한다. '서치라이트 작전' (Operation Searchlight)이 시작됐다.
... 정치인과 학생운동 지도자 등을 체포하고, 전국의 통신을 차단하고, 언론검열이 시작됐으며, 군대가 국립 다카(Dhaka)대학을 점령하고, 주요 도시의 장악에 무제한적인 무력 사용을 허가하는 등 (그 뒤 1980년 5월 한국의 광주에서 이와 비슷한 군부의 작전이 실시됐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파키스탄 판 '화려한 휴가' 작전이었다...
이때 동파키스탄 동남부의 최대 도시 치타공(Chittagong)에서 무명의 지우아르 라만(Ziuar Rahman)소령이 '방글라데시'(Bangladesh, '벵갈인의 나라'라는 뜻)의 독립을 선언하며 모든 벵갈인의 궐기를 촉구했다. <아와미연맹>의 라만(Sheikh Mujibur Rahman, 1920~1975)당수는 체포됐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인도 캘커타로 피신해, 4월 10일 망명정부의 수립을 선언했다. '지우아르 라만'은 추종자들과 군사 조직체인 '무크티 바히니'(Mukti Bahini, 해방군대)를 결성하고 파키스탄군에 맞섰다. 인도 의회는 3월 31일 방글라데시의 지원을 의결하고 '무크티 바히니'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동파키스탄 궐기 며칠 만에 25만 명의 피난민들이 인도 국경을 넘어 피신해 왔다. 인도는 이들 피난민들의 수용소를 지어주고 식량과 의복을 공급하고, 질병까지도 돌봐 주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니자, 피난민은 1,000만 명을 넘어 섰고, 인도 중앙정부도 이들의 구호에 힘이 딸리게 됐다. 사태 초기 이 문제를 '파키스탄 내부 문제'로 보고 공식적인 반응을 피하던 인도도 "파키스탄 문제는 인도의 문제도 된다"며 개입의 불가피성을 밝히게 됐다. 인도로서는 차제에 동파키스탄을 파키스탄에서 분리 독립시킴으로써 그 동안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파키스탄을 상대하던 국가 안보상의 취약점을 해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벵갈 해방 군사 단체인 '무크티 바히니'에 대한 지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파키스탄은 "인도의 그러한 행동은 파키스탄의 분열을 획책하는 무력간섭"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런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소규모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궁지에 몰린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한다. 인도 역시 육해공군을 총 동원해, 동파키스탄 공격에 나섰다. 제한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전력은 인도가 우세했다. 파키스탄은 오래 끌수록 불리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인도가 동부 전선에서 <동파키스탄> 전투에 주력할 때 서부전선을 공격했다. 이는 동부전선에 집중돼 있는 인도군의 주력을 분산시키고 <동파키스탄>에서 패배하더라도 지난 1,2차 전쟁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카슈미르를 완전 장악한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인도는 이러한 파키스탄의 공격에 이미 대비하고 있어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 파키스탄은 미국이나 중국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별다른 지원이나 지지가 없었다. 전쟁발발 14일째인 12월 16일, 인도군은 <동파키스탄>의 수도 <다카>를 점령했다. 파키스탄군 9만 3천명이 항복해오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전쟁의 결과로 <동파키스탄>이 신생국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파키스탄의 힘이나 영향력은 반으로 쪼그라들었고, 인도는 서남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솟아났다. 3차 전쟁은 '심라협정(Simla Agreement)'의 조인으로 마무리 됐으며, 정전 상태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주민투표를 통해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도는 양국간의 대화로 풀자고 주장한다. 무슬림이 다수인데도 30%에 불과한 땅을 차지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분쟁의 국제문제화를 통한 현상타파를 주장하나, 인도는 현상유지 입장에서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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