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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27): 아시아의 영토분쟁 -카슈미르(Kashmir)지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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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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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될 당시 파키스탄은 <동(東)파키스탄>과 <서(西)파키스탄>으로, 국토가 두 개로 나눠진다. 그렇지만 그 모양은 지극히 불합리했다. 무슬림(이슬람교도, 회교도)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동․서 파키스탄은 인도와 분리돼 독립했지만, 두 지역은 적대적인 인도를 중간에 두고 수천 ㎞나 떨어져 있었다. 동․서 파키스탄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파키스탄(Pakistan, 이 나라 이름의 유래도 많지만, 우르두(Urdu)어 'Pak'은 '깨끗한'이란 뜻이고, 'istan'은 '땅'이란 뜻으로 '힌두교도(인도)와 기독교도(영국)가 없는 깨끗하고 성스러운 나라'라는 뜻으로 쓰인다)이라는 이름으로 살림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 지역의 문화적 차이는 점점 넓어지고 감정의 골도 깊어만 갔다. 땅은 <서파키스탄>이 더 넓었지만, 인구는 <동파키스탄>이 더 많았다. <동파키스탄> 즉 동(東)벵골은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더욱 가난했다. 동벵골을 지배하는 관료는 벵골어를 쓰는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 우르두어를 쓰는 펀잡(Punjab)인이었으며, 군대도 <서파키스탄>의 펀잡인이 지휘했다. 독립이후 <동파키스탄>에 집행된 예산은 <서파키스탄>의 30~40%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의 식민지 같았다. 이렇게 곪아오던 상처는 결국 <동파키스탄>이 인도의 도움을 받아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초래한 1971년의 제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다른 이름 : 벵갈전쟁,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역시 카슈미르 분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파키스탄의 내분으로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가 개입해 무력 충돌이 재개돼 전쟁은 1년 동안 계속됐고, 카슈미르의 국경선 아닌 국경선(통제선, Line of Control, LOC) 767㎞가 이 전쟁을 계기로 확정됐다.
이 3차 전쟁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아보자. 1970년 11월 12일 저녁, 거대한 싸이클론(Cyclone;서남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동파키스탄>을 덮쳤다.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인접한 인도 벵골 지역도 사이클론이 덮쳤으나, 피해가 크지 않았다. 인도는 그 전날 경보를 발동해 위험 지역 주민들의 대피를 독려했으나, 파키스탄 정부는 당일 날에야 경보를 발령했다. 참혹한 재난을 당한 동파키스탄 주민들은 인접한 인도와 비교해보며 자신들이 방치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파키스탄 정부의 구조나 구호활동도 동파키스탄 주민들을 자극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동파키스탄의 수난(水難) 구호활동에 수송기 1대와 경비행기 몇 대만 보내주고, 그 많은 헬리콥터는 한 대도 보내지 않았다. 동파키스탄 언론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인도에서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아서 보내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그런 미증유의 물 난리에 구호활동을 위해 헬리콥터를 보내는데, 이를 막을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인도 정부가 이를 즉각 반박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헬리콥터가 구호활동에 별 쓸모가 없어 보여서 보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20여 년간의 차별 대우에 화가 난동파키스탄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분노의 구름이 몰려 들었다.
이런 와중에 1970년 12월 7일 파키스탄 총선거가 실시됐다. 이 선거에서 <동파키스탄>의 지역 당인 <아와미연맹 Awami League>이 과반수를 차지해, 제 1당이 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유는 <동파키스탄> 주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아와미연맹>은 전체 313개 의석 가운데(지역구 의석은 300개인데, 인구 비례에 따라 서파키스탄은 138석, 동파키스탄은 162석이 배정됐다) <서파키스탄>에서는 한 석도 얻지 못했으나, <동파키스탄>에서만 160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이 된 것이다. 건국 이래 파키스탄의 정치적 주도권은 <서파키스탄>의 권력 엘리트가 쥐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난리가 난'것이다. 그렇지만 <서파키스탄>은 순순히 권력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서파키스탄> 대통령은 약속했던 민정이양을 늦추고 있다가 1971년 3월 1일, 민간 내각을 해산시키고 의회의 개회도 연기시켰다. <동파키스탄>에서는 대대적인 민중 봉기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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