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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26): 아시아의 영토분쟁 -카슈미르(Kashmir)지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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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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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은 '물과 기름 사이'인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종교가 다르다. 인도 독립을 즈음해, 영국과 인도에서는 '식민지 인도'를 힌두교도들의 <인도>와 이슬람교도들의 <파키스탄>으로 분리해 독립하는 데에는 대충 합의에 이르렀으나, 인도 대륙 북서단에 위치한 카슈미르 지역의 귀속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카슈미르는 지역 주민 200만 명 가운데 대부분(77%)이 이슬람이었던데 비해 소수인 힌두교계(22%)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토후국이었다(인도가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 인도 대륙의 3분지 2는 영국이 직접 다스리고, 나머지 3분지1은 500여개의 토후국(군주국, 소왕국)을 통한 간접통치였다. 이들 토후국도 큰 것은 인구가 1,600만 명이 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작은 토후국은 인구가 82명에 땅이 50만평 정도 되는 것도 있었다) 독립 이후에도 카슈미르의 귀속을 두고 파키스탄과 인도가 경쟁을 벌이던 1947년 10월, 파키스탄은 무장세력을 카슈미르 내부로 침투시켰다. 아무래도 카슈미르가 인도로 넘어갈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이 무장 세력은 '잠무소왕국'의 주도(州都)인 스리나가르(Srinagar)를 향해 진격을 계속했다. 카슈미르나 인도의 입장에서는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을 집어 삼키기 위해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카슈미르 소왕국의 왕(마하라자 하라 싱, Maharajah Harasingh: '마하라자'는 산스크리트 어로 '위대한 지배자' '대왕' '국왕'등 통치자를 표시하는 말이다))은 이틀 뒤(1947.10.24.) 카슈미르의 인도 귀속을 천명하고, "침략자의 격퇴를 위해" 인도에 파병을 요청했다. 인도 수상 네루는 전투부대의 파견을 승인하고, 두 나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이것이 제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이 전쟁은 1949년 1월 정전될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양측에서 각각 수천 명이 전사하는 등 적잖은 피해가 났다. 이 전쟁은 유엔이 중재에 나서면서, 양측이 정전협정을 맺는 지점에서 지역이 나눠지게 된다.(우리 나라의 6.25 전쟁이 마무리될 때, 양쪽 군대의 대치선을 따라 군사분계선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양국의 전쟁은 1월에 멈췄지만, 정전협정은 6개월 뒤인 1949년 7월 카라치(Karachi)에서 조인됐다. 이 <카라치협정>에 따라 카슈미르는 인도 측에 63%, 파키스탄 측에 37%씩 분할 점령됐다. 이에따라 카슈미르는 북서부의 파키스탄령 '아자드(자유) 카슈미르'와 남동부의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로 나누어지게 됐다. 그 뒤(1963년) 인도는 자기들이 차지한 카슈미르(잠무카슈미르) 지역을 인도공화국의 1개 주(州)로 편입 조치했다.
명확한 국경선이 획정되지 않은 채 양분된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1964년에 두 나라 간에 또 전쟁이 일어난다. 유엔의 정전 감시활동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인도와 파키스탄은 정전 경계선을 따라 크고 작은 충돌을 벌여왔다. 연간 수천 건의 충돌이 UN에 보고됐다. 1964년 들어 인도령 카슈미르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공격이 잦아졌고, 12월 들어 인도측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대해 반격을 가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 전쟁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 전에 파키스탄은 64년 5월 당시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 1889~1964) 인도 총리가 사망하자 인도의 정국혼란을 기화로 인도 측 카슈미르 지역에서 비정규전을 실시해 카슈미르를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제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도 치열했다. 기록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탱크가 동원된 전쟁"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수천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개전 후 10개월 동안 두 나라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쟁을 치르다가, 65년 9월 유엔(UN)의 제의로 정전이 발효되면서 대규모 지상전은 끝나게 됐다. 두 나라는 각기 승리를 주장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소련 코시긴(Aleksei Kosygin) 수상의 중재로 66년 1월 타슈켄트 선언(Tashkent Declaration)에 합의하면서,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됐으며, 1949년 1차 전쟁 이후 설정된 경계선으로 각각 되돌아갔다. 두 차례나 전쟁을 치뤘지만 국경선(경계선)은 그대로고 1차 전쟁에 이어, 막대한 사상자만 낸 채, 경계선은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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