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04-17 오후 06:02:50

          사설지홍기 교수. 데이터 시대지홍기 교수 Ⅲ. Gen AI 시대지홍기 교수 Ⅱ.인공지능시대지홍기 교수 Ⅰ. 제4차 산업혁명시대김안제 박사의 隨想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강성주의 뉴스로 세상읽기종합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독자투고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결혼

부음

뉴스 > 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제2차 아편전쟁(애로우호 전쟁)

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9. 제2차 아편전쟁(애로우호 전쟁)

다시 아편전쟁으로 돌아와서, 중국은 <난징조약>에 따라 5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실행을 미루고 있었고, 내륙지역까지는 외국 상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영국 상인들은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된 무역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 나라 중앙정부에 대해 시장 개방 확대를 계속 요구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합니다. 영국은 당장 전쟁을 하고 싶었지만, 흑해(黑海)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와 전쟁(크림전쟁, 1853~1856)을 하고 있어서, 참고 있었지요. 다음에 더 자세하게 알아 보겠지만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일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의 세계전략(世界戰略)이었으니까, 중국 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지요. 영국은 그러면서도 1854년과 1856년 두 차례에 걸쳐 외국 사절의 북경(北京) 상주 허용, 아편무역의 합법화, 상선과 군함의 양자강 자유 항행, 내륙과 연해 도시 개방 등을 포함한 거의 '조폭' 수준의 조약 개정 요구를 했습니다. 물론 청 나라는 거절했습니다.
이 때 소위 애로우(Arrow)호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1856년 10월 광저우항에 정박해 있던 애로우호를 청 나라 병사들이 덮쳐 중국인 선원 12명을 해적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이 범선은 중국인 소유로, 선장은 영국인이었고 선적은 홍콩에 두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해적질을 하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단속을 받았던 전과가 있는 배였습니다. 사건이 나자 광저우 주재 영국 영사(領事)는 선원의 석방을 요구하고 청 나라 병사들이 애로우호에 게양돼 있던 영국 국기를 끌어 내린데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청 나라는 당시 애로우호에는 영국 국기가 게양돼 있지도 않았고, 중국인 소유의 선박인데다 홍콩으로 된 선적 등록 기간도 끝났으므로 영국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영국의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그런다고 순순히 물러설 영국이 아니지요.
이보다 몇 달 전(1856. 7) 프랑스 선교사 1명이 허가 받지 않은 지역(황푸 조약에 따라 개항장에서만 선교가 허용됐는데도 이 선교사는 광둥(廣東)성 광저우를 벗어난 광시(廣西)성에서 활동을 했다)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신도 20여명과 함께 체포돼, 처형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와 합동으로 군사를 일으킵니다(1857.12).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 6천여명의 영․불 연합군은 광저우 시내를 불지르고 양광총독 예밍천(葉名琛)도 체포해 인도로 압송하고, 시민들도 살상합니다. 그래도 중앙정부가 교섭에 응하지 않자, 이듬해(1858) 영불 연합군은 북상해 베이징의 관문인 톈진(天津)을 공격하며 베이징을 위협하자 어쩔수 없이, 청 나라는 세 불리를 인정하고 <톈진(天津)조약>을 맺습니다(1858.6). 톈진조약의 주요 내용은 "각국 공사(公使)의 베이징 상주를 허용하고, 난징(南京) 등 10개항을 추가로 개방하고, 외국인의 內地 여행과 양쯔강 통항을 허용하고, 기독교 선교를 공인하며, 상하이에서 별도로 세금 문제와 관련한 교섭을 갖고, 두 나라에게 전쟁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상하이에서 열린 교섭에서 영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아편을 양약(洋藥)으로 간주해 합법적인 무역품목으로 취급하도록 하는 등 강자로서의 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엄청 당했지만, 제국주의 시대에는 힘의 논리가 국제정치의 본성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것만 이행하기도 힘든 지경인데, 청 나라 조정에서는 더 큰일이 벌어집니다. 국가나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어디나 비슷하지만, 대책 없는 강경파(强硬派)들이 득세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당시 청 조정에서도 <톈진조약>에 따라 외국의 공관들이 베이징에 주재하고, 내지와 양쯔강 통항의 자유에 따라 서양인들이 마구 드나들면 청 왕조의 지배체제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됐습니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영국과 전쟁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청 조정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이듬해(1859.6) 조약 비준(批准)을 위해 영국, 프랑스, 미국 대표들이 탄 배가 톈진을 지나 베이징으로 올 때 청 나라 포대(砲臺)가 공격을 개시해 영국 군함 4척이 침몰하고 대표가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다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다시 벌어진 전쟁(1860.9)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2만여 명은 베이징 교외의 원명원(圓明園) 등을 파괴․약탈하고 북경에 입성했습니다(1860.10). 황제는 여름별장으로 도망 가고, 외국군이 베이징을 점령했으니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지요. 이에 청 나라는 <베이징조약>을 맺으며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베이징조약의 주요 내용은 "2년전의 톈진조약의 내용을 다 인정․비준하며, 톈진 항을 추가로 개방하며, 외교사절의 베이징 주재를 허용하고, 배상금 800만냥을 내놓고, 몰수한 카톨릭 재산을 돌려주고, 청국인의 해외 이주도 허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나 조직이 강경파에 휘둘리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베이징조약 외에도 영국과 러시아는 청 나라와 별도의 조약을 맺었는데, 영국은 별도로 홍콩 섬의 건너편인 구룡반도의 일부를 할양받았습니다. 홍콩섬에 대한 중국이나 외국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건너편인 구룡반도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는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지요. 또 러시아는 2차 아편전쟁에는 참전도 않고, 협정을 중재(仲裁)해 주었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면적의 땅을 청 나라로부터 뺏어옵니다.

전체 : 0

이름

조회

작성일

전체의견보기(0)

 

이름 :  

제목 :  

내용 :  

 

 

비밀번호 :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문경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간문경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 새롭게 아름답게 찾아온 ‘2

문경시 베트남 까마우성 계절근로

문경시 점촌점빵길 빵 축제 특별

점촌 원도심에서 제2회 점촌점빵

문경시장애인주간이용시설 장애인

영순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정기회

문경시보건소 찾아가는 감염병 예

문경교육지원청 중등 신규 및 저

문경시보건소 심뇌혈관질환 예방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문경사무소

창간사 - 연혁 - 조직도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 원격

 상호: 주간문경 / 사업자등록번호: 511-81-13552 /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2길 38(점촌동) / 대표이사: 남정현 / 발행인 : 남정현/ 편집인: 남정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남정현
제호: 인터넷주간문경 / 등록번호: 경북 아00151 / 종별: 인터넷신문 / 등록일 2010.10.28 / mail: imgnews@naver.com / Tel: 054-556-7700 / Fax : 054-556-9500
Copyright ⓒ (주)문경사랑.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