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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과 차(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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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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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국인과 차(茶)
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2차 아편전쟁(1856~1860)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영국인들은 언제부터 차(茶)를 마시기 시작했길래 이렇게 난리를 치나 하는 걸 좀 알아보겠습니다.
"영국인의 하루는 차로 시작해 차로 끝난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영국인들은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섞는 밀크 티(Milk Tea)를 주로 마시는데, 많으면 하루에 6~7 잔, 적어도 4~5 잔은 마신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전쟁 중인 군인들도 차 마시는 시간이 되면 전투를 잠시 쉬고 차를 마신다고 하니, 아주 오랜 습관인 것 같은데, 사실은 한 100년 남짓 밖에 안됐다고 합니다. 많이 마시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아침에 잠이 깨면 침대에서 부인이 만들어다 주는 Early Tea(Bed Tea)를 마시고, 아침 식사와 함께 Breakfast Tea, 오전 일과가 대충 정리되는 11시 쯤 Eleven Tea(Elevenses), 오후 4시 Afternoon Tea, 저녁 먹으며 High Tea, 저녁 8시쯤 After Dinner Tea, 밤에 자기 전 Night Tea 등 차 마시기와 일상생활이 서로 섞여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이런 차 마시기 습관은 지역, 생활계층에 따라 애매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차(茶)하면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이지요. 차나무의 학명(學名)이 바로 camellia sinensis인데, 이 sinensis가 라틴어로 '중국(인)'을 뜻하는 말이거던요. 제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문화방송의 베이징(北京)특파원을 지내면서 보니까, 중국인들 정말로 차를 많이 마시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잇빨이 까매요.
중국측 기록을 보면 중국 전설에서 중국인의 시조이면서 의약과 농업의 창시자인 신농씨(神農氏) 때인 기원전 3000년 때부터(지금으로부터는 5000년 전이죠?) 차를 마셨다는 주장이 있고 또 지금부터 3000년 전에 차 나무를 재배했다는 설, 또 실제로 중국 남부 윈난성(雲南省)에는 수령이 1500~ 1700년 된 야생 차나무가 살아있습니다. 또 2016년 1월 14일 상해일보는 "전한(前漢) 경제(景帝, 재위 BC 157~141) 때 왕릉에서 나온 탄화(炭化) 유기물을 분석해 봤더니 그게 바로 차 잎사귀였다"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참고로 한국측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서는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 때 차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신라 흥덕왕 때인 서기 828년 지리산 기슭에 차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 때부터는 차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초기에는 음용(飮用)보다는 치료용, 의학용으로 차를 마셨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아시아 항로가 개척된 15세기 말 이후 포르투갈과 네델란드 상인들이 먼저 아시아에 와서 각종 향신료와 함께 차를 수입해 가서 "동양에서 신비한 약초가 왔다"라고 소문 내고는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판매한 기록들이 많다고 합니다.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으로 소개가 됐다는 거지요. 포르투갈과 네델란드 궁정에서 시작된 차 마시는 습관이 영국으로 전해진 것은 100년쯤 지난 17세기 중엽이라고 합니다.
본국에서의 청교도혁명을 피해 프랑스와 네델란드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한 뒤 왕위에 오른 영국왕 찰스2세(재위 1660~1685)와 포르투갈 공주 캐더린의 결혼이 계기가 됐습니다. 차가 일찍이 전파된 포르투갈의 공주인 캐더린(Catherine de Braganza,1638~1705)이 정략 결혼으로 영국(잉글랜드)의 왕비가 되면서, 영국 왕실에 차가 전래된 것이지요. 300년 조금 더 됐습니다. 이때 영국은 차만 얻어 마신 것이 아니라, 결혼 지참금으로 인도 뭄바이 근처의 7개 섬 등을 받고 브라질과 인도와 무역할 권리도 넘겨 받았습니다. 훗날 이것이 영국의 인도 진출에 도움이 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 무렵(1699) 영국은 연간 4만 파운드(18톤 정도)의 차를 수입했고, 1708년에는 24만 파운드(108톤 정도)의 차를 수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 당시 차에 대한 영국 정부의 세금은 119%로 엄청나게 높아, 차 밀수가 성행한데다 싸구려 가짜 차가 유통됐고, 1784년이 돼서야 12.5%로 세율이 낮아져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1800년 영국의 중국 차 수입은 연간 1,419톤으로 치솟습니다.
이처럼 차를 마시기 전에는 영국도 커피(coffee)를 많이 마셨습니다. 1652년 영국에서 최초로 옥스퍼드 시내에 커피하우스가 등장했습니다 (Oxford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80Km쯤 떨어져 있는데, 유명한 옥스퍼드대학이 있는 곳이고, 옛날 그 커피하우스 자리에는 이름이 다른 커피하우스가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350년이 넘었지요?). 큰 인기를 끌던 커피가 100년쯤 지나면서 영국에서는 서서히 인기를 잃어갑니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분석하는데, 우선 영국은 그 당시 커피를 재배하는 식민지가 없어 파리, 암스테르담, 비엔나 등에 비해 비싼 커피를 마셔야 했고, 이럴바에야 차라리 동인도회사가 독점 공급하는 차를 마시자는 풍조가 일어난데다, 궁정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마시던 차가 중류층을 거쳐 서서히 서민들에게로 퍼지게 됐습니다. 물론 그 사이 설탕이 대량으로 재배. 보급되면서 떫은 홍차도 밀크와 설탕을 섞으면서 맛이 좋아졌고, 커피하우스에 출입이 금지된 여성들이 차를 주로 마시면서 음료의 흐름, 유행을 바꾸어 나갔고, 음침한 영국의 기후도 커피보다는 따끈한 차가 더 어울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후 1800년대 중반들어 인도의 아쌈(Assam)지방에서도 야생 차 나무가 발견된데 이어 중국으로부터 차 종자와 차 나무가 밀반출돼, 인도 스리랑카 등지로 재배지가 확대됐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차가 일반화된 것이 100년 남짓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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