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04-17 오후 06:02:50

          사설지홍기 교수. 데이터 시대지홍기 교수 Ⅲ. Gen AI 시대지홍기 교수 Ⅱ.인공지능시대지홍기 교수 Ⅰ. 제4차 산업혁명시대김안제 박사의 隨想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강성주의 뉴스로 세상읽기종합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독자투고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결혼

부음

뉴스 > 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청나라의 조공무역

2018년 11월 12일 [주간문경]

 

3. 청나라의 조공무역

이번에는 해외무역에 대한 유럽과 중국의 차이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알다시피 중국(淸)의 실력이 처음으로 만천하에 공개된 전쟁이 아편전쟁인데, 이 1차 아편전쟁(1840~1842)이 바로 무역과 관련된 것이었으니까요.
중국의 명(明,1368~1644), 청(淸,1616~1912)나라는 기본적으로 해상 교통이나 무역, 어업 등을 제한하는 해양정책을 폈습니다. 당(唐, 618~907)나라 때만해도 중국의 광저우항은 해상실크로드의 출발항으로 아랍의 무역선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반해, 그 뒤에 생긴 나라들이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고 국방상 목적으로 이런 쇄국정책 비슷한 정책을 편 것이 약간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북방에서 침입해 오는 이민족에 대비해 장성을 쌓는 등 대비를 해 왔지, 해상부문에 대해서는 일종의 쇄국정책을 써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대외 무역이라는 것도 18세기 초까지-아니 거의 망할 때까지- 세계 제일의 대국으로(이라고 생각하고) 조공무역(朝貢貿易)을 주로 해 왔습니다. 조공(朝貢)은 제후나 신하 국가가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말하고 이러한 형태의 무역 거래를 조공무역이라고 하는데, 제후나 주변국들은 필요한 것 보다는 중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것을 주로 바쳤고, 중국은 유교 경전이나 과학서적, 악기, 비단, 자기 등을 하사품으로 후하게 내려 보냈습니다. 이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지대물박(地大物博)해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에 따른 것으로 외국과는 대등한 입장에서의 무역이 아니라, 조공을 통한 교역만이 있다는 지독한 자존감의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중국의 콧대는 아편전쟁이후 완전히 박살나게 되지요.
조공무역과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인 1793년 영국왕 조지 3세(재위 1760~1820)는 중국 건륭제(재위 1735~1795) 탄신을 기념하는 축하사절단을 보냈습니다. 매카트니(George MaCartney) 백작이 이끄는 이 사절단은 이름이 축하사절단이지만 사실은 무역 확대와 공사관 설치 등을 요청하는 무역사절단이었습니다. 영국사절단은 황제를 만나려면 삼궤구고두(三 九叩頭-세 번 무릎 꿇고 절하면서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인사법)의 예를 표해야 한다는 청측의 요구를 피하기는 했지만, 무역 확대라는 목적 달성에는 실패합니다. 이 때 건륭제가 조지3세에게 보낸 답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뜻을 두는 것은 오직 훌륭한 통치를 행하고 천자의 직무를 잘 수행하는 것 뿐이오. 진기한 물건이나 값비싼 물건에는 관심이 없소. 그대가 보내온 공물을 내가 가납하는 것은 머나먼 곳에서 그것을 보내온 그대의 마음을 생각해서일 뿐이오. 그대의 사신이 직접 보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없는 물건이 없소. 나는 기이하고 별난 물건에 관심이 없으며 그대 나라 출산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없소."
소위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오랫동안 굳어 온 것입니다. 유럽에서 오래 외교관 생활을 했던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아담스(John Adams, 1735~1826)는 "사실 아편전쟁의 진짜 원인은 중국의 콧대 높은 조공무역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은 1500년대 초반 포르투갈 등 계속되는 유럽 세력들의 교역 요구에 시달리다 1685년 강희제 때 광저우[廣州] 등 남부의 4개항(廣州 福州 寧波 云台山)을 개방해, 세관을 설치하고 중국 상인들과의 교역을 허가합니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쪽의 항구를 아주 제한적으로 개방한 것으로 대외 교역에 대한 청 나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조치입니다. 이것은 명 나라 때인 1371년 내려진 해금령(海禁令)이 다소 완화된 것으로, 유럽 상인들은 차(茶)와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해 갑니다. 그러나 1757년 건륭제는 다시 해금정책을 강화해 다른 3개의 항구는 닫아 걸고, 광저우[廣州]항 하나만 외국 상인과 교역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청 나라는 광저우[廣州] 항의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 외국 상인들이 거주할 수 있게 하고 거래도 청 정부의 허가를 받은 13개 상인조합[공행:公行]과 무역거래를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중국 상인들이 외국과의 무역 거래를 독점하고, 외국 상인들도 관리하고, 관세도 징수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청 나라는 자국의 관리들이 외국 상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1780년대부터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중국과 무역을 시작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인들은 공행(公行)에 내는 막대한 수수료와 관세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국 상인들은 이러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阿片)을 중국에 수출하는 영국-중국-인도를 연결하는 삼각무역(三角貿易)을 구상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체 : 0

이름

조회

작성일

전체의견보기(0)

 

이름 :  

제목 :  

내용 :  

 

 

비밀번호 :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문경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간문경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 새롭게 아름답게 찾아온 ‘2

문경시 베트남 까마우성 계절근로

문경시 점촌점빵길 빵 축제 특별

점촌 원도심에서 제2회 점촌점빵

문경시장애인주간이용시설 장애인

영순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정기회

문경시보건소 찾아가는 감염병 예

문경교육지원청 중등 신규 및 저

문경시보건소 심뇌혈관질환 예방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문경사무소

창간사 - 연혁 - 조직도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 원격

 상호: 주간문경 / 사업자등록번호: 511-81-13552 /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2길 38(점촌동) / 대표이사: 남정현 / 발행인 : 남정현/ 편집인: 남정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남정현
제호: 인터넷주간문경 / 등록번호: 경북 아00151 / 종별: 인터넷신문 / 등록일 2010.10.28 / mail: imgnews@naver.com / Tel: 054-556-7700 / Fax : 054-556-9500
Copyright ⓒ (주)문경사랑.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