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04-17 오후 06:02:50

          사설지홍기 교수. 데이터 시대지홍기 교수 Ⅲ. Gen AI 시대지홍기 교수 Ⅱ.인공지능시대지홍기 교수 Ⅰ. 제4차 산업혁명시대김안제 박사의 隨想강성주의 역사에서 배운다강성주의 뉴스로 세상읽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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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76):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7): “1945년, 해방”

일제(日帝) 식민지 시절 작가 심훈(沈熏, 1901~1936)은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며 이런 시를 남겼다.
[ 03/01 10:05]

세계의 영토분쟁(75):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6): “소위 ‘문명론’에 대하여”

오늘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피탈될 그 무렵, 세계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우리는 개항이 늦고 또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욕심에서 우리나라를 병탄한 것도 모자라 만주에 가짜 나라 만주국(1932~1945)을 세우고 또 중국과 전쟁하고 미국에 기습 공격을 가한 뒤 전쟁을 계속하다가 패망했다고
[ 02/19 16:45]

세계의 영토분쟁(74):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5): 일본, 독도 편입-3

다음은 울릉군수 심흥택이 직속상관인 강원도관찰사 서리 이명래(李明來) 춘천군수에게 올린 보고서의 내용이다.
[ 02/11 08:49]

세계의 영토분쟁(73):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4): 일본, 독도 편입-2

일본 정부의 교활하고 비밀스런 일처리는 지난번에 살펴보았고, 이번에는 문제의 각의(閣議) 결정문과 <시마네현(縣) 고시 제40호>의 내용을 알아보자. 먼저 각의 결정문이다.
[ 01/29 16:20]

세계의 영토분쟁(72):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3): 수산업자 나카이의 기록-3

수산업자 나카이(中井養三郞) 본인의 글 <사업경영개요>와 오쿠하라(奧原碧雲)씨의 글을 보면 일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독도를 훔쳐갔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 01/18 16:25]

세계의 영토분쟁(71):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2): 수산업자 나카이의 기록-2

수산업자 나카이(中井養三郞)의 문서는 일제가 독도를 침탈한 때(1905년 2월) 보다도 5년이나 지난 1910년 작성된 것이므로 일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는지가 자세하게 제대로 기록돼 있다.
[ 01/08 14:27]

세계의 영토분쟁(70):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1): 수산업자 나카이의 기록-1

을미사변 이후의 조선 역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망명[俄館播遷, 1896.2~1897.2], 대한제국의 성립(1897.10)으로 이어진다.
[ 12/28 14:54]

세계의 영토분쟁(69):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20): 일본, 독도 편입-1

대한제국 광무(光武,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 4년(1900년)에 내린 이 칙령(勅令)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 12/21 15:37]

세계의 영토분쟁(68):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19):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우리가 처음에 살펴봤듯이 서양(유럽) 세력들은 1492년부터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고, 곧 이어 아프리카를 남쪽으로 돌아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등 동양으로 넘어왔다.
[ 12/11 16:02]

세계의 영토분쟁(67):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18): 일본 해군 수로지-2

1907년에도 독도가 <일본수로지>가 아니라 <조선수로지>에 기록된 것으로 봐서, 일본은 그 당시까지도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11/30 17:14]

세계의 영토분쟁(66):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17): 일본 해군 수로지(水路誌)-1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태정관(太政官) 제도를 폐지하고 1885년 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은 서양의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여러 분야에서 나라를 근대적인 형태로 바꿔가기 시작한다.
[ 11/20 17:19]

세계의 영토분쟁(65):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6):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1877년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명심하라”는 지령문이 내려왔는데도 외무성의 와타나베(渡邊)국장은 울릉도에
[ 11/13 10:05]

세계의 영토분쟁(64):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5): “태정관지령문, 1877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부속으로 된 시말(始末)‘ 항목의 내용 가운데 독도에 관한 내용은 이렇다.
[ 11/13 10:00]

세계의 영토분쟁(63):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4):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조슈번 정부의 지도자로서 막부의 쇼군을 무너뜨리고 천황을 권력에 복직시키기 위한 쿠데타 지도)는 무릎을 쳤다.
[ 11/13 09:58]

세계의 영토분쟁(62):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3):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일본이 언제부터 한국을 침략할 마음을 먹기 시작했을까?” 일본의 소위 정한론(征韓論)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 11/13 09:56]

세계의 영토분쟁(61):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2):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이번에는 1785년 일본에서 나온 <삼국접양지도, 三國接壤之圖>를 한번 보자. 이름에서는 (일본 한국 중국 등) 3국이라 했지만
[ 11/13 09:54]

세계의 영토분쟁(60):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1):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안용복의 활약 이후인 18세기 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이 만든 모든 공식 지도는 독도(獨島)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표시하거나 ‘조선 영토’라고 표시했다.
[ 11/13 09:52]

세계의 영토분쟁(59):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 (10): 안용복과 박어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이런 “외교적 업적”을 남긴 안용복은 어떤 인물일까? 당연히 외교관은 아니다.
[ 11/13 09:50]

세계의 영토분쟁(58):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 (9): 안용복의 2차 도일

1696년 봄(5월),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2차 도일이다. 안용복은 허가없이 국경을 넘어간 죄(1차 피랍, 1693년) 때문에 2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 11/13 09:48]

세계의 영토분쟁(57):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 (8): 일본 외무성의 거짓말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일본의 영토 >다케시마 >다케시마 문제 >다케시마의 영유]에 들어가 보면 지난번에 말한 울릉도 도해금지령에 대해 이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 현장을 좀 살펴보자.
[ 11/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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