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청나라와 일본은 외부로 부터 충격을 받고 나라를 바꾸기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큰 차이가 났고, 그 차이는 제국주의 시대답게 청불전쟁(淸佛戰爭, 1884~1885)과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1895) 등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
11/12 15:15]
작년(2015) 10월 영국 방문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하면서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100년 동안 사회적 불안(不安)과 외세의 침략(侵略), 전쟁의 고통(苦痛)을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11/12 15:14]
다시 아편전쟁으로 돌아와서, 중국은 <난징조약>에 따라 5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실행을 미루고 있었고, 내륙지역까지는 외국 상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영국 상인들은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된 무역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
11/12 15:12]
임칙서는 1839년 3월 광저우에 도착해, 아편 밀매를 단속하러 왔다는 방(榜)을 써 붙였습니다. 광저우 시민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관리가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왔다"고 환호했습니다. 임칙서가 얼마나 용기있고 과감하게 임무에 임했는지 차례대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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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15:09]
이제 그러면 문제의 아편(阿片 또는 鴉片)에 대해 알아 볼 순서입니다. <아편>이란 중국 말은 본래 OPIUM(오피엄)이라는 영어 단어를 중국 말로 한역(漢譯)한 말입니다. 마치 Coca-Cola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쓴 것과 같은 것이지요 [
11/12 15:07]
기자 생활로 사회 활동기를 대부분 보낸 사람이 <역사에서 배운다> 운운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우선 상당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미국의 언론학자 미첼 찬리(Mitchell V. Charnley, 1899~1991, Minnesota대학 언론학부) 교 [
11/12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