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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가 배추로

2012년 05월 25일(금) 12:20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어제까지 내리든 비가 그쳐가는 아침에 서울 병원에 가기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몇 시에 오냐며 말을 걸어옵니다.

“친구를 만나면 늦을 것이고, 바로 오면 오후 3시쯤 오는데 왜 물어요?”
집사람은 대답은 안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면서 웃지만 내가 그 속을 모르겠어요.

“씰데없는 짓하지 말고 집에 있어요, 비 오는데 어딜 가려고 그래....”

집사람이 4, 5일에 한 번씩 다니는 고사리 밭이 있는데, 아마 오늘이 가야하는 날인 모양입니다. 날씨가 좋아도 여자 혼자 가기는 좀 거북한 산인데, 더구나 비가 오는데 산에 간다니 말이 됩니까?

“한 시간 마다 전화 해볼 테니까 알아서 하시오.”

“아니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친구 몇이 함께 갔다 올게요.”

“아! 글쎄 안 됩니다. 내일 나하고 같이 갑시다.”

집사람은 대답은 안하고 실실 웃기만 합니다. 벌써 약속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안갈 사람이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괜한 소리를 하는 거지요.

대문을 나서는 나를 배웅을 하면서 저녁 먹고 오면 더 좋다며 인사를 하고는 내가 뭐라고 지끼까봐 얼른 방으로 들어갑니다. 집사람이 소화기 계통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도 다니고 집에서 조약도 해보고 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고통 서러웠든 병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자연 속의 신선한 공기와 적당한 운동 편안한 마음이 약이 되었든 거죠.

거기다가 산나물과 고사리, 더덕 등 짭짤한 부수입까지 챙기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산에 오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짬을 내어 집사람과 같이 산을 오를 때가 있습니다.

보리밥에 된장 한 숟가락 고추 몇 개, 마늘 몇 조각, 물 한 병, 김치 조금 산에 갈 때 가져가는 음식의 전부지만, 솔 내음 어우러지는 그늘에 앉아서 먹는 그 맛은 천하 별미가 따로 없습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사람 꼬라지는 말이 아니지만 산이 주는 신비로운 기운이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해줍니다.

불치의 병으로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환자들도 산속에 살다보면 병이 씻은 듯이 완쾌되어 완치 판결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보고 있습니다.

가지 말라고 말리기는 했어도 필시 갔으리라 생각을 하고는 11시쯤에 집에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솔솔 뿌리든 비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후에는 해까지 나서 걱정하는 마음은 덜했지만 그래도 비온 뒤라 미끄러운 산을 어떻게 다닐까 걱정은 되었습니다.

오후 5시에 집에 오니 집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조금 있으려니 온통 흙칠을 해 가지고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얼른 내 눈치를 한 번 보고는 수돗가로 갔습니다.

“잘 하는 짓이다. 고사리는?”
집사람은 수돗가에서 나를 힐끗 돌아보면서 웃기만 합니다.

“그런데, 자빠졌는가 옷이 왜 그래?”

친구 둘이서 산을 올라갔는데 누가 먼저 와서 고사리를 다 꺾어간 뒤라 할 수없이 산딸기만 조금 따서 산을 내려 왔답니다. 산 아래는 할머니 혼자서 붙이는 400평 정도의 밭이 있는데 그 날도 할머니 혼자서 조(좁쌀) 밭을 매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친구하고 둘이서 가져간 빵을 할머니 밭둑에서 할머니하고 같이 먹고는 일찍 집에 오기도 열쩍어서 할머니 밭이나 좀 메 준다는 것이 밭 전체를 다 메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오늘 잘했지요?”
집사람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생글생글 웃습니다.

“고사리는 그렇다 치고 품값은?”

나도 같이 따라 웃으며 말을 건네니 집사람이 배낭에서 배추 한 포기를 품값이라며 보여 줍니다. 할머니가 그냥 가면 내가 염치도 없는 늙은이가 된다며 한사코 배추라도 한 포기 가져가라고 해서 얻은 것이라며 저녁에 초장에 찍어 먹잡니다.

고사리가 배추로 둔갑은 했어도 집사람은 즐거운 하루가 되었습니다.

평소 못 말리는 사람, 박 고집이라고 내가 놀렸었는데, 오늘은 그 고집 때문에 좋은 일을 해서 내 기분도 흐뭇합니다. 고맙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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