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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2012년 05월 04일(금) 13:41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주)문경사랑

얼마 전, 산양 큰마을 현리를 들렀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형(兄)의 처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형의 집은 시내에 있지만 현리가 좋아 자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더구나 금요일 주말에는 주변 사람들과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가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안해와 함께 들러주기를 권했다.

그 말을 듣고 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은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먼 길을 달려온 어느 날 저녁, 안해와 함께 찾아갔다.

현리 마을 첫 머리에 있는 집은 승용차 서너대가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마당 가에는 사랑채로 사용했음직한 오래된 한옥 한 채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던 형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형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선배 부부들이 뒤이어 도착했다.

넉넉하면서 빈틈없는 형수의 음식장만을 지켜보면서 늦은 시간 불쑥 찾아온 무례가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을 찾기까지 기대한 바가 컸기에 애써 죄스러움을 저 길 너머 흐르는 금천 밑으로 밀어 넣었다.

“몇 년 전, 저녁에 우연히 친정에 들렀는데 엄마가 느닷없이 내일 새벽 이 집을 허물러 누가 온다는 거에요. 내가 깜짝 놀라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어요. 안된다고, 절대 이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했어요.”

조상대대로 내려온 집을 아끼는 마음, 옛 주거공간에 대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 이 공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한옥 한 채가 온전히 지금까지 남게 된 데는, 이렇듯 절묘한 타이밍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우연이었던 것일까.

대여섯 평 정도의 공간에는 큰 다탁과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기들이 놓여있고, 웃묵에는 크지 않은 달항아리 하나가 문갑위에 놓여 운치를 더하였다. 그리고 아랫묵에는 온돌방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미자 한 잔해요. 이곳에서는 주인이 따로 없어요. 서로 필요한 것 있으면 나눠 먹곤 해요.” 농업기술센터에서 오미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가 도자기 주자(酒子)에 담긴 빨간 오미자를 권한다.

그 옛날 지조 있고 학식 있던 인천 채씨 할아버지가 카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고 시대의 어리석음을 탓했을 이곳 사랑채는 이렇게 열린 공간으로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리, 어느 때였을 것이다. 바람이 실버들을 흔들고 지나가면 글 잘하는 선비들이 흥에 취해 소리 높여 한 문장을 내리 읽었을 것이다. 그러면 동네 개들도 덩달아 댓귀 받듯 짖었을 것이다. 이 유서 깊은 마을의 봄 밤, 지금은 그 어디에도 불 밝힌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작은 도시생활에 지친 마음이 여린 사람들만이 오늘, 이곳 현리의 밤을 지키고 있다. 곧이어, 사랑채의 주인이 바깥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작은 눈매에 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청한다.

살펴보면,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사라진 옛 것 중 하나가 사랑방(舍廊房) 문화이다.

지금 우리들 주거공간은 안방과 아이들 방으로만 구별되지만, 여기에 사랑방이 하나 더 있었다. 사랑방은 부부의 내밀한 공간인 안방과 달리 바깥주인이 거처하여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주인이 접빈객이 되어 손님을 맞이하면서 바깥 세계와 만나는 문화공간이자 정치적 무대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주인의 인품과 가풍을 알게 되고, 다른 곳과 비교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인품을 다듬는 학습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가 감사하고 고마운 것은 잠시나마 옛 사랑방의 분위기를 맞보았기 때문이다. 쉽게 음식을 주문하고 급히 자리를 떠나야 하는 자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인정이, 그래서 어떤 문화가 있는 듯 했다.

더하여 가슴에 새겨보는 것은 나만의 색깔과 문화를 갖춘 사랑방을 가지고 싶다.

한 칸 방에 소나무 다탁을 넣어 크지 않은 화병 하나로 방을 꾸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니, 그냥 듣기만 하겠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웃기만 하겠다. 그것이 그들과 하나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5월, 가정의 달이다. 나는 5월의 첫 주, 이곳 강릉생활을 마무리하고 소중하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간다. 그래서 이웃과 더불어 더욱 살갑게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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