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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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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8호’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
신라선종사·서예사·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 중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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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31일(목) 10:48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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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 ⓒ (주)문경사랑 |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12월 30일 보물 제138호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를 국보 제315호로 승격 지정했다.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이다.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비의 비문은 신라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것으로 그가 지은 다른 비문들인 대숭복사비,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일찍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 - 쌍봉(雙峰)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사, 그중에서도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또한,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비문을 쓴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과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했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또한, 이 비문은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 기증)하는 절차를 알려준다. 또한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건립의 후원자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으며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특히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와 같이 이 비는 1천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 서예사, 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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