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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북면 노인회, 영월 엄흥도 기념관 일대 선진지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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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우·김재국·채창근·김광진 고문의 주선으로
조선조 충신 충의공 엄흥도 묘소 참배
신현봉 회장, “회원단합 다지고 즐거운 하루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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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9일(월) 11:25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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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대한노인회 산북면분회(회장 신현봉) 회원 45명은 지난 5일 산북면분회 고문인 엄태우 아시안트레딩(주) 대표이사 회장(본보 고문), 김재국 (주)코리아안전기업 대표이사 회장, 채창근 (주)케이피엠테크 대표이사 회장, 김광진 (주)일동프라스틱 대표이사 회장의 주선으로 영월군 영월읍 ‘엄흥도 기념공원’ 일대를 견학하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이날 오전 8시 산북을 출발한 신현봉 회장을 비롯한 노인회원들은 10시 30분 영월에 도착해 엄태우 고문(아시안트레딩(주) 대표이사 회장)과 영월엄씨 종친회 엄인영 회장의 안내로 충의공 엄흥도 묘소를 참배한 뒤 엄흥도 기념관, 정려각 등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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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산북면 노인회원들은 이어서 영월읍 한 횟집에서 엄태우 고문이 제공한 푸짐한 중식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원간 단합을 다졌다.
이날 김광진 고문은 국수 8박스를 노인회원들에게 제공했는데, 신현봉 회장은 이 국수를 산북면내 이동노인회에 배분해 면내 전 노인회원들이 국수를 맛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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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신현봉 노인회장은 “참으로 좋은 구경을 했다”며 “엄태우 고문을 비롯해서 김재국, 채창근, 김광진 고문께 너무도 감사하고, 특히 엄태우 고문은 60만원에 달하는 중식비까지 내주시고, 김광진 고문은 국수를 보내 오셔서 너무도 고맙다”고 산북면내 노인회원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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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심 강했던 조선 충절의 표상 엄흥도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며 단종 시신 거둬
242년 뒤 단종 복위로 공의 충절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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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옳은 일을 하다가 그 어떠한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며 단종의 시신을 거둔 조선조 충신인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
그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 할 때 주위 사람들은 후환을 두려워해 간곡히 말렸으나, 불의(不義)와 의(義)를 구별할 줄 알고 의협심이 강한 엄흥도는 이 말을 하며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아들 3형제와 함께 미리 준비한 관을 지게에 지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해 영월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지금의 장릉)에 몰래 매장했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않아 경상도 순흥에서 금성대군과 부사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면서 단종과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여러 신하들이 세조에게 주청했다.
1457년 10월 24일 세조는 금부도사 왕방연으로 하여 사약을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의 단종은 그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고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
역적의 시신에 손을 대면 삼족을 멸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누구도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엄흥도는 단종이 입고 있던 옷을 가지고 계룡산 동학사를 찾아가 생육신 김시습과 함께 그곳에다 단을 쌓고 초혼을 부르며 제사를 올린 후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지금도 공주 동학사 숙모전에는 엄흥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영월 엄씨 문중에서는 엄흥도가 남긴 이 유훈(遺訓)을 이어 받아, 그의 충의정신을 높이 받들고 있다.
동강에 버려진 단종을 장사지낸 그의 후손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을 간 후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갔다.
그 후, 정조 때는 조정에서 엄흥도의 충성심을 높이 인정해 강원도 관찰사로 하여금 제물을 대주어 엄 충신의 묘를 단장하고 제사를 모시도록 했다.
현종 9년(1668년) 참판 여필용(呂必容)이 엄흥도의 복호(復戶)를 주청했으며, 그 다음 해에는 송시열(宋時烈)의 건의로 그의 후손들을 등용했다.
삼족지멸의 위협 속에서도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낸 엄흥도를 기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년) 청주에 정려각이 건립됐고, 영조19년(1743년)에는 엄흥도에게 공조 참의 벼슬과 제물을 함께 내렸다. 영조 34년(1758)에는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인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추증하고 영조가 친히 제문을 내려 사육신과 함께 모시도록 하명했다.
엄 충신의 청주 정려각은 영조 35년(1759년) 그의 고향인 영월로 옮겼으나 세월이 흘러 정려각이 허물어지자 1970년 지금의 위치인 장릉 화소 안으로 옮겨 세우고 그 앞에 홍살문을 세웠다.
고종 12년(1875년) 후손인 엄현좌, 엄현문, 엄현상이 선조(先祖) 엄흥도에게 시첩(諡牒)의 은혜를 베풀어주십사 하고 올린 청시상소(請諡上疏)로 이듬해(1876년) 11월 조정에서는 엄흥도에게 충의(忠毅)의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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