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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문화재 국보 시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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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승격 지정 예고
통일신라 말기 대표하는 전형적 양식·기법
신라선종사·서예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 중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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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6일(금) 14:47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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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5일 보물 제138호인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번지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를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이다.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비의 비문은 신라가 낳은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것으로 그가 지은 다른 비문들인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일찍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 - 쌍봉(雙峰)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또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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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주간문경신문 | |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30일간 국보 지정예고된 후 문화재위원회의에서 최종 지정 여부가 심의·결정된다.
한편, 비문을 쓴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했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또 이 비문은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기증)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내용이 있다.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기록과 건립의 후원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점,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특히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처럼 이 비는 1천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서예사·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이 비는 전체높이 412cm, 비신높이 273cm, 비신너비 164cm, 비신두께 23cm이며 재질은 비신은 편마암, 귀부는 화강암으로 924년(신라 경애왕 원년) 세워졌다.
고도현 기자 dhgo@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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