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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 燕雀鴻鵠(연작홍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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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와 소인배는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말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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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9일(목) 07:27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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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와 소인배는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말로 쓴다.
새 중에서도 기러기(鴻)나 고니(鵠·곡 혹은 혹)는 큰 몸집으로 높은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닌다. 그래서 이 두 새는 예부터 ‘군자(君子)’의 상징이었다. 반면 제비(燕)나 참새(雀)는 기껏해야 땅위를 스치듯 날며 모기 따위의 보잘 것 없는 벌레를 잡아 먹고 산다. 그러니 구만리 창공을 날으는 기러기나 고니의 기상을 알기나 하겠는가?
진승(陳勝)은 진(秦)나라 말기 한 부잣집의 머슴이었다. 하루는 밭을 갈다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나왔다.
“장차 큰 인물이 되면 결코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그러자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었다.
“뭣이라고? 머슴인 주제에 큰 인물이 되겠다고?”
진승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웅대한 포부를 알리요!”
진시황(秦始皇)이 죽고 아들 이세(二世)가 다스리게 됐지만 포악함과 사치가 아버지를 능가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불평 할 수도 없었다.
진승은 후에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돼 어양의 장성을 수비하러 일행 900여 명과 함께 가던 중에 대택이란 곳에서 징병관을 죽이고 반기를 들면서 소리쳤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따로 있을소냐?”
다들 “와!” 하고 호응을 했다. 이 후 수많은 백성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마침내 진승은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후에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농민봉기(?)의 업적을 높이 기려 당당히 사기(史記)에서 제후(諸侯)의 반열에 올려 기록함으로써 그를 인정했다.
이 때부터 연작(燕雀)은 ‘소인배(小人輩)’, 홍혹(鴻鵠)은 ‘군자(君子)’를 뜻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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