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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邊方), 문경의 문화 그리고 문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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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07일(금) 17:2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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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최근 지역의 사회, 문화, 역사, 생활 등 다양한 범위에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인문사회과학적 접근으로 지역학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아야 변화하는 대내외적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처럼, 지역학은 그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문경이 다른 지역과 어떻게 비교되며 그 특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답해야 한다. 결국, 그 답은 현재에 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문경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지나온 자취를 살펴보아야 명확해진다.
문경은 변방이었다. 변방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을 말한다. 그럼 중심지는 어디일까. 상주와 예천이다. 1906년부터 점차적으로 1914년까지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우리 지역은 예천군에 속했던 동로면과 화장면(지금의 내화리 일대)과 상주군에 속했던 영순면, 산양면, 산북면 지역 등이 문경군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지금의 문경읍 정도의 작은 면적이 문경현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주시와 예천군의 중심부에서 본다면 위에서 열거한 지역들은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임이 분명했다. 변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심부의 그것과는 응집과 통제력이 약하다. 그 영향은 인물면에서 뚜렷이 알 수 있다. 비록 우리 지역의 영순면 율곡에서 허백당 홍귀달 선생 그리고 산북면 서중리의 청대 권상일 등과 같은 입신양명의 걸출한 명신(名臣)이 있었다지만, 이는 일부이다.
조선 세조때의 공신 연복군 장말손 선생이 말년에 산북면 내화리에 터를 잡고 여생을 보내어 우리 지역과 인연이 있다. 그 후 후손이 영주시 장수면으로 이거하여 우리 지역에는 최근 유허비가 세워졌다. 이렇듯, 현재 세거해오는 역사적 인물들의 흔적은 상주와 예천에 비하여 상당히 적은 편이다. 그러나, 변방의 실재가 그러할지라도 오히려 변방이었기에 두드러진 우리 지역의 특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찾는 일이 우리 문경문화의 참된 면모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문경문화를 확장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에 어느 단체로부터 우리 지역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요청받았다. 담당자는 문경의 마을에 대한 주제로 강의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 평소에 관심있던 몇 곳의 마을에 대한 글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쉽게 청을 받아들였다.
봉황이 머무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잿봉서마을과 아직도 그 이름들이 원형질의 화석처럼 남아 있는 금포 백포, 주암정 그리고 도천사지삼층석탑과 함께 우리 지역 유불교 문화의 시원이 된 웅창마을 그리고 한 사람의 의지로 태극기 휘날리는 마을이 된 문경읍 모싯골 마을 등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문(人文)이 곳곳에 묻혀있어 정말 소중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우리 마을에 대한 소개가 자칫 문경을 알리는 다른 버전(Version)처럼 구색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다. 그보다 먼저, 그 마을들이 갖는 문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그러한 특징들의 태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찾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다 문경과 문경문화를 알고 싶어졌다. 그것은 변방에 자리 잡았던 우리 문경문화, 나아가 문경학(聞慶學)을 완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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