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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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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5일(화) 17:5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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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날씨가 다시 추워졌어요.”
저녁식사 뒤에는 안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한동안은 반재이 도랑을 돌곤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근처 학교 운동장을 돌고 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결심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안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겨울이 문제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몸은 나른해진다. 더구나 바깥의 추운 날씨를 생각하면 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여간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집을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건강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걷기는 묵은 하루를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수행같은 일과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의 추위는 정말 만만치 않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이었다. 공직에 있을 때다. 정기 인사에서 강릉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안해는 강릉까지 동행하겠다고 했다.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원주와 평창을 지나자 낯선 풍경과 생소한 지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이승복 기념관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름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내가 있던 곳에서 정말 멀리 왔다는 현실감이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간,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불안이 몰려왔다.
주변을 들러보았다. 높아지는 산세에 맞춰 길게 내려오는 산 그림자들은 주위를 어둡게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던 것일까. 안해가 말을 걸어왔다.
“날씨가 추워지네요. 위쪽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래, 강릉은 봄에도 눈이 오는 곳이라고 했지. 봄이지만 아직 봄이 아닐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관사였지만 안해의 온기로 따뜻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안해는 내게 따뜻한 아침을 해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안해는 혼자 떠날 나를 염려해서 월요일 휴가를 신청했던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낯선 관사에는 보온 밥솥의 온기가 안해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노란색 쪽지가 보였다. 안해가 직접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당신, 이곳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네요. 항상 건강하게 지내고 점촌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할께요.’
그때였다. 가슴 속에 무언가 따뜻한 온기가 올라옴을 느꼈다. 그것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산과 들에 꽃망울이 터지는 봄날 생명의 온기와 푸른 잎들을 받쳐주는 가지가 무성한 여름의 풍요로움 같은 것이었다.
그랬다. 춥던 강릉의 겨울에도 나를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한 것은 안해의 저 따뜻한 글이었고 매일 아침에 받아보던 문자였다.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내 뜰을 휘젓고 있을 때에도 안해는 큰 느티나무가 되어 함께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그 아래에서 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무엇인가 올라옴을 느꼈다. 그리고 어둑해진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마지막 남은 눈 보따리를 다 풀어내듯 펑펑 눈이 오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강원도 봄에도 눈이 내리는 강릉이구나.
목도리를 두르고 걷고 있는 안해를 돌아보았다. 추워하는 안해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그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던 안해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하면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었네… 고마워.”
그러나, 말없이 운동장만을 돌았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갔다. 봄의 온기가 선 듯 묻어 있었다. 우수(雨水) 지나 경칩(驚蟄)이다. 봄, 봄이 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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