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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의 송년회

2024년 12월 31일(화) 15:51 [주간문경]

 

 

↑↑ 김정호
신한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정부부처(업무)평가위원

ⓒ (주)문경사랑

 

올 한 해를 마무리 한다. 내일이면 섣달 그믐이다. 교수신문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라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11월 25일~12월 2일 설문조사 결과 1위로 선정(41.4%) 되었으니,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실시한 설문임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은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극단으로 치닫던 당시의 현상이 지금과도 연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도량은 한서 장자(莊子)에서 방자하게 날뛰는 행동을 표현하는데 쓰였고, 발호는 후한서에서 권력을 남용해 전행을 일삼은 발호장군을 비판하며 쓰였다. 한국 고전에서는 조선 전기 문신인 서거정의 오원자부(고양이의 노래)에서 ‘요리 뛰고 저리 날쳐’라는 뜻의 도량발호가 나온다.

어려운 상황은 정치인이 만들어 놓고, 연말이 어수선하여 자영업자가 어려우니 이럴 때일수록 송년회 취소 말고 진행하라는 분도 계셨으니 예정대로 고향 모임의 가까운 분들이 남양주에서 모여 송년회를 가졌다. 문경 출신들이 모였으니 대체로 보수 성향의 분들이다. 그날도 정치 얘기는 하지 말고 술 마시자는 제의가 무색하게 작금의 상황이 시작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실은 정치적 성향은 중도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도 보수를 드러냈다가 철저하게 망신당했던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의 상황이 기억되어 정치적 성향을 노출 안 시키며 살아왔다.

그때 나는 진보인 김대중도 싫고,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모두가 체중 미달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은 내게 중도 후보인 이인제를 찍게 하였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보수 쪽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원망을, 김대중 후보 지지자에게는 덕분에 당선되었다는 원치 않는 인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해 겨울 교사들의 동계 방학 연수에 특강을 하며, 제가 이인제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가 내 강의를 듣던 선생님들의 대다수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보수들 사이에서도 중도 보수가 설 자리가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 송년회의 그날도 같은 동네에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 계엄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에서 부터 다투기 시작하여 다음 대선에 누가 적합하냐는 부분에서 그 친구는 보수적 색채가 강한 후보를 나는 중도 확장성이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가 선배들이 계시는 데도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길래 그만하자고 얘기하고 종료하였다.

똑같이 내린 결론은 진보를 대통령까지 당선시키면, 의회 권력과 집행부까지 장악했을 때 브레이크 없는 장치에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 형태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같았다.

정치가 나아지려면 진보는 성숙해야 하고, 보수는 혁신해야 한다. 보수는 그 가치를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보수는 민주화 위기 이후에도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규모의 사회운동적 도전과 저항에 직면해 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199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미국산 수입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박근혜 정권 때인 2016~2017년의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2024년 12월의 윤대통령 탄핵 촛불집회까지, 이때마다 중도층․중산층의 적극적 참여가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 때를 제외하고는 정권이 진보로 바뀌었다.

보수는 라틴어 conservare(보존하다)에서 유래했다. 전통과 기존 질서의 유지, 점진적이고 신중한 변화 선호, 경험과 역사적 지혜 중시, 안정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전통 속에서 혁신자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여야만 중도적인 분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보수가 보수끼리 그 어느 때 보다 심하게 다투는 2024년 송년회의 풍경, 나만의 경험은 아닌 것 같다. 다가올 2025년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엄청난 변화가 다가올 것 같다. 보수의 선택을 자랑하며, 화기애애한 덕담을 나누는 내년의 송년회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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