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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승재(德勝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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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0일(금) 17:45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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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모처럼 집에 머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집에 머물면서도 우리들의 생각과 시선은 자주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 공간은 몸을 머물게 하지만 정신까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거실 벽을 보았다.
그때, 작은 방과 연결된 벽면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덕승재(德勝齋)이다. 상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파 윤보영 서예가의 글씨이다. 덕승재는 집의 이름, 즉, 당호(堂號)다. 오래전에 지은 이름인데 연유는 이렇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미국의 유명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아들을 훌륭히 키운 재미교포 어머니가 졸업식 축사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녀는 연설에서 “동양의 고전에 재주보다 덕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라고 했다.
그때, 그 말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이는 생활의 지향과 같은 경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그 말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명심보감이었다.
“덕승재(德勝才) 위군자(爲君子), 재승덕(才勝德) 위소인(爲少人)”
그때 들었던 연설 문구의 출처가 분명하였다. 이미 아이들에게 “남에게 덕을 베풀자”라는 가훈을 선언하였었고, 고전에서 확인된 터이기에 망설임 없이 저 글을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지역의 서예가인 경암 김호식 선생에게 글씨를 부탁했다. 그리고 거실에 걸어두었다. 그것이 거실 전면 벽에 걸려있는 다른 액자이다.
얼마 지나서 집의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짓는 재주가 없기에 고심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실의 액자를 보았다. 그리고 덕승재의 재(才) 자(字)가 집 이름으로 쓰이는 재(齋)와 음(音)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안해와 아이들에게 우리 집 이름으로 덕이 많은 집, 재주보다 덕이 승(勝)하다는 의미의 덕승재(德勝齋)를 제안하였다.
김춘수 시인이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노래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가족이 머무는 집에 ‘덕승재’라고 부르게 되면서 집은 우리에게로 와서 다른 의미의 집이 되었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름을 불러 주면 그때부터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대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시인의 노래처럼 말이다. 하물며, 가족과 함께 머무는 집에 이름을 불러주면 정감 또한 있지 않은가.
집의 이름을 짓고 스무여 해가 흘러 어느덧 이순(耳順)을 지나는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지면에서 아호(雅號)가 없는 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망년우(忘年友)인 서울의 최창묵 선생께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호(號)를 지어주었다. 현덕(玄悳)이었다. 깊고 그윽한 덕(德)이라는 뜻인데 과분한 듯했다.
겸양을 하였더니, 그렇다면 당호인 덕승재(德勝齋)가 어떠냐고 했다. 옛사람들은 당호를 아호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집과 일체화했던 선비의 현실인식인 셈이다.
그래서, 덕승재는 집의 이름이면서도 아호가 되었다. 다섯 살 손녀 유안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덕승재라고 부른다. 이처럼, 덕승재와의 인연은 오래되고 길게 이어져 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다. 시인의 마지막 절구(絶句)로서 끝을 맺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걸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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