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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6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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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1일(금) 16:40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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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나뭇잎이 무성하다. 잎은 나무를 덮어버렸다. 새들은 깃들고 바람은 잎에 머물며 위로를 받는다. 나아가기만 하던 바람은 나무를 만나 비로소 스스로를 가라앉힌다. 바람을 진정시키는 것은 무성한 잎의 역할이다.
“그래, 됐어. 괜찮아.”
그럼, 바람은 급하게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어 잠시 온 길을 돌아본다. ‘왜, 급하게 어디로 가려고 했을까.’
이렇게 숨을 고른 바람은 가야 할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 뒤따라온 바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바람은 가지와 잎에 앉아 쉼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성장한 잎들은 햇볕과 비를 가려주고, 작은 소리에도 재빨리 몸을 숨겨야 하는 새들에게 도피처이면서 안식처가 되고 있다.
5월의 봄은 분주했다. 아찔한 꽃의 탄생과 성장(盛粧)에 이어 처연(悽然)한 종말을 감내해야 했던 5월은 화려했지만 가혹하였다. 신록의 계절 5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꽃의 생멸(生滅)을 한차례 겪고 난 지금, 지금은 계절의 급한 전환에서 잠시 비껴있다.
이제 6월은, 여름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숨을 고르는 쉼표가 되고 있다. 잎은 더 성장하기 위하여 몸을 가다듬고 한 번 숨을 고른다. 그리고, 농익은 흙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열매를 익게 하려고 내심으로 분주하다.
우리들은 어떤가. 긴 겨울의 적적함과 무료함 그리고 봄의 격정을 겪고 난 지금, 다소 심리적 안정감을 비로소 갖는다.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6월은 자연이 주는 풍성함과 함께 심리적인 풍요함에도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잠시 지나간 5월을 되돌아 보자. 카톨릭에서는 5월은 성모성월의 달이다. 언젠가 어느 5월의 밤이었다. 안해와 함께 성모성심 기도를 신자들 앞에서 바칠 기회가 있었다. 장미꽃 넝쿨로 가득한 성당 마당을 촛불로 밝히고 안해와 함께 기도 낭송을 하였다. 어느 나무에 머물다 온 소슬한 바람이 우리를 지나갔다. 다음 날 떠나야 했지만 기도를 통해 다소나마 불안감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때 장미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불교의 사월 초파일도 5월에 속해 있다. 우연이었을까. 이렇듯 종교적 축일들이 이때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계절이 주는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초파일은 석가의 탄신일이다. 부처는 태어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부처 스스로 자신의 존귀함을 인류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는 보편타당적 입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공표한 것이다.
창밖에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으로 나무는 큰 숨을 쉬며 몸을 흔들고 있다. 부드럽게 몸을 흔드는 나무를 바라보다 어느새 함께 숨을 쉬게 된다. 그러다 문득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글귀를 언제나처럼 떠올린다. 경전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쩌면 저 경구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가오는 한여름을 맞이하는 지금의 6월은 게으르지 말고 홀로 행하여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의 삶을 위해 쉬어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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