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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향토사가 “산북면 소야리 동학농민혁명 근거지였다”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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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서북지역 총지휘 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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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수) 10:08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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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창근 향토사가(왼쪽)과 소야리 마을 주민들. | ⓒ (주)문경사랑 | | 이창근 향토사가는 그동안 문경의 묻힌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경시 산북면 소야리가 동학농민혁명의 근거지였다는 사실을 밝혀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창근 씨는 최근 산북면 소야리를 수 차례 현장 답사하고 마을이장 최종점(59)과 주민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문헌기록에 따라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증언자들을 동영상 촬영하였다.
이창근 씨는 산북면 소야리가 대접주(大接主, 동학의 교단조직인 接의 최고 지도자) 최맹순이 경상도 서북지역(강원도, 충청도까지)에 1894년 3월부터 동학농민혁명군을 총지휘했던 근거지라고 밝혔다.
또한 산북면 이곡리 석문(石門)은 동학농민혁명군의 근거지 중의 하나로서 일본군과 최초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도 밝혀냈다고 했다.
또 이곡 석문 위 5km 지점에 있는 석봉(石鳳) 굴골 동네의 동굴이 농민군들의 은신처였으며 회의장소였다. 석봉 언덕 너머 석달(돌담골) 마을은 농민군이 관군을 피해 숨어 들어와서 생긴 마을이다.(석달마을 김봉식 92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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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산북면 소야리 전경. | ⓒ (주)문경사랑 | | 최맹순은 첩첩산중 산북면 소야리에 동학농민혁명 지휘부를 설치하고 예천을 비롯한 경상도 서북면 일대의 동학농민혁명군을 총지휘했던 최고 사령관이었다.
그는 소야리 입구, 종곡 골짜기에서 여러 해 동안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분을 옹기장수로 위장했다.
최맹순이 옹기, 사기그릇을 만들어 팔았던 사기골이라는 동네 이름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는 현장을 확인했다. 당시 전라도 고부 봉기가 한창일 때 최맹순은 동학농민혁명군 사령부 접(接)을 설립하고 면(面)과 리(里) 단위까지 조직하여 48개 접소에 그 교도가 7만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사령관 최맹순은 아들 최한걸과 11월 21일 체포되어 예천 장날 만인이 보는 앞에서 최맹순은 목을 잘라 장대에 내거는 효수를 당했으며, 아들 최한걸은 남사장(南沙場)에서 총살되어 모래사장에 파묻혔다.
이창근 씨는 “아~ 슬프다. 목숨바쳐 구민(救民)의 선봉에 섰던 이 위대한 업적, 역사적 현장이 문경인들의 무관심과 세월의 덧개 속에 잊히고 묻혀져 아무도 아는 이도 없고 표지석(標識石) 하나도 없는 허망한 역사의 현장 위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무언지 북받치는 어두운 마음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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