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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이 혼자서 종일 절 그림자 헹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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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화) 17:13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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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여승방 빈 뜨락에/ 사루비아 붉게 타고 …”
민병찬 시인의 대성암(大成庵)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성암(大成庵)은 김용사의 산내 암자(庵子)인 금선대(金仙臺)와 화장암(華藏庵), 양진암 중 본찰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다. 암자는 정조24년(1800년)에 영월대사에 의해 김용사의 청하전(靑霞殿)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건물은 200년이 넘는다.
민병찬 시인은 우리 문경시 산양면 출신으로 1986년 ‘시조문학’에 추천돼 등단한 이후 나래문학상, 호남시조문예상, 정석주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 대표 중견시인이다. 시집으로 사모시조집 ‘가을비 그 뒤’ ‘뒷짐지고 걷다가’ 등을 펴냈다.
처음 그의 대성암 시를 접하고 시인의 내면에 불교적 이해가 상당함이 느껴졌다.
“선방(禪房)은 비었는지/ 고무신이 두어 켤레…”
대성암은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수행하고 있는데, 몇 해 전부터 다른 비구니 스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실 대성암은 별도의 선방이 없다. 부처님을 모시는 금당과 스님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별도로 나누지 않았다. 하나의 건물 안에 단층인 금당이 있고 금당과 연결된 건물은 이층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절 입구 쪽에 부엌과 신자들의 이용공간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선방은 별도로 있지 않다. 아마도 대성암은 수행사찰보다는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의 생활공간에 방점을 둔 때문일듯하다.
그런데, 시인은 고무신 두어 켤레가 댓돌 위에 놓인 것을 보고 선방이 비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여기서 시인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보통 스님들은 운동화를 주로 신는데 댓돌 위에 고무신만 있다면 스님이 출타 중일 때가 많다. 평소 시인이 사찰 생활에 다가가 있음을 짐작해 본다.
“샘물이 혼자서 종일/ 절 그림자 헹구더군…”
대성암 입구 현판에 쓰여진 글씨는 조계문(曹溪門)이다. 절 허리를 감아 흐르는 계곡은 적지않이 넓고 깊다. 그래서 여여교(如如橋)를 건너야 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절 문 이름에 시내 계(溪) 자를 넣은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 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저 샘물이다. 샘물은 큰 돌확 안에서 종일 절 그림자를 혼자 헹구고 있다. 시인의 시어적 표현과 불교적 이해가 여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듯하다.
시인은 돌확 안에 가득 고인 샘물에서 절 그림자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샘물을 바라보면, 돌확 안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이 절 그림자를 혼자 종일 헹구듯 느껴지는 것이다.
여승방 빈 뜨락과 고무신 두어 켤레, 절 그림자를 혼자서 헹구는 샘물로 이어지는 어느 오후의 한적과 적요(寂寥)를 연상케 하는 시적 진행은 불교의 적멸(寂滅)과 가깝다. 그러나, 그 뿐이다. 어느 가을날 적멸에 빠져들 듯 풍경 같은 한적함은 불쑥 찾아온 길손에 의해 깨어진다.
“절앞에 어능나무/ 암수 두 그루 서 있다가// 잘 익은 열매 하나를/ 길손에게 툭 던지며…”
조계문 앞에는 은행나무와 자목련나무가 서 있다. 시인이 찾은 그날이었을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가 길손에게 떨어졌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 그리고 시는 끝을 맺는다.
“운달산(雲達山) 가을 소식을/ 알고 왔냐 묻더군”
만산(萬山)에 산벚꽃 가득하고 조계문 앞 자목련이 활짝 피던 날, 그동안의 오랜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대성암 금당 준공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가까운 때에 신록의 어능나무와 샘물이 혼자서 종일 절 그림자 헹구는 대성암에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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