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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인생의 ‘모범답안’ 고규환 아세아 주식회사 대표

후학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문경사랑을 실천하는 ‘찐 문경사람’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어려운 학생 돕는 것이 내가 할 일”

2024년 03월 25일(월) 11:09 [주간문경]

 

ⓒ (주)문경사랑


고규환 아세아 주식회사 대표의 인생은 말 그대로 ‘모범답안’같은 삶이었다. 그의 이력이나 인생관,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절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산양면 녹문이 호적상의 본적이지만 실제로 그는 1942년 문경읍 하리에서 태어났다. 선친이 문경군청에 근무할 때 살았던 곳이 문경읍이었고 5살 때 예천군청으로 전근한 아버지를 따라 예천으로 옮겨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곳에서 마쳤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마 ‘장학’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사회공동복지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고 회장은 문경장학회, 세하장학지원회, 예중세하장학회, 한양대 고규환장학회, 대경장학회, 이화 김영숙 장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씨중앙종문 장학회 명예이사장과 한양대 건축동문장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등 후학들의 배움에 도움을 주는 장학활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2009년 한국부자학연구회에서 ‘봉사부자상’를 수여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얼마의 장학금을 지원했다는 것을 밝히기 꺼려한 고 회장이 지금까지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그가 주장하는 장학금의 개념은 단순히 공부만 잘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 있고 공부 잘하는 학생은 자칫 장학금을 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신은 “공부는 못해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장학금을 받은 뒤 “회장님처럼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고마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받을 때 정말 보람차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장학금 때문에 고맙다는 소리를 듣자는 것은 아니다. 생색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그저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몇 명이라도 제대로 자라주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이 그의 진솔한 생각이다.

ⓒ (주)문경사랑


이러한 철학은 기존의 관념을 깨트리는 것이어서 종종 충돌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아세아산업개발이 대전에 있었던 관계로 대전과 인연을 맺은 고 회장은 대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행정학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대전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에 고 회장은 대전대 후학들에게 장학금을 주려다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려는 자신의 뜻과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우선 지급해야 한다는 교수들의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결국 총장까지 나서서 고 회장의 뜻을 교수들에게 설득시켜 장학 사업을 성사시켰다.

그가 장학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봐온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공무원이 덕분에 비교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그는 빨랫감을 구하러온 여인이 아기를 들쳐 업고 허겁지겁 부엌으로 달려가 어머니가 차려준 밥부터 먹는 것을 늘 보았다. 또 시장을 가는 어머니는 꼭 동전을 준비해 동냥그릇에 한 개씩 나눠주곤 했다. 당시에는 그러한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자라면서 철이 들자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작은 실천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고 회장 가정의 가훈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余慶)이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꼭 복을 받자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의 식구들은 남을 돕는 것을 의무로 느낄 만큼 몸에 배인 생활수칙이다.

40대에 음성꽃동네를 방문했던 고 회장은 “걸어 다닐 힘만 있어도 축복”이라며 걷기도 힘든 노인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후 그는 고아원 후원을 시작했고 자식들도 함께 데리고 갔다. 재산보다 정신적 유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가족들에게 몸소 실천하면서 남을 돕는 것을 산교육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원래 장학 사업보다 학교를 운영해 후학들을 직접 키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극구 말리는 바람에 꿈을 장학 사업으로 바꿨다. 학교운영은 자칫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학교에 사고가 나면 재단이사장이 욕먹기 일쑤라며 적극 만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학교를 생계수단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많아 자신의 순수한 뜻이 왜곡될 걱정도 한몫했다.

이후 남을 돕는 것을 연구하다 “사회복지가 뭔지 알아야 겠다”며 뜻을 세운 것이 대전대에서 본격적인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대전대 대학원에 등록하면서 집이 있는 서울까지 다녀야하는 시간이 아까워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는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관철하는 고집스러운 성격이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충남대에서 건축공학 석사, 대전대에서 복지학 등 3개 분야의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도 대전대에 강의를 나가는 등 남다른 향학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현재 석사 4개, 논문 박사 1개, 명예박사 1개 등 화려한 학력을 자랑한다.

이러한 학구열에 대해 그는 “술을 안마시니 저녁에 할 일이 없다”며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고 한다. “문경공고 시절 한때 공부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고 밝힌 고 회장은 특히 수학에 집착했다. 한 문제라도 모르면 아예 백지답안을 제출했다가 교사에게 혼나기도 했다. 또 극장에서 몰래 영화를 보다 지도교사에게 들켰으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보다가 이튿날 학교에서 꾸지람을 듣고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 고교시절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의 성격은 장학회 설립 때의 일화에서도 나타난다. 모교인 문경공고의 후학들을 위한 문경장학회는 그가 동창회장을 맡았을 때였다. 후배들은 “동창회장만 하면 너도나도 장학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고 회장의 약속도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3천만 원을 먼저 내고 사정이 괜찮은 친구 7명에게 1천만 원씩을 기부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6개월 안에 3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지 못하면 내가 다 채워 넣겠다”며 후원자들을 설득해 동참을 권유했다. 결국 1억5천여만 원은 고 회장이 부담했지만 주위의 도움 덕분에 문경장학회는 4억5천만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문경장학회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말을 묻는 질문에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며 “열심히 살아라”는 말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다르구나”하면 될 것을 “아니다” “틀렸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상대의견을 존중하면 될 것을 틀렸다고 하는 것은 적을 만드는 말이라며 이것을 구별하기만 해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1968년 한양대를 졸업하면서 삼주개발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고 회장은 1974년 아세아시멘트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성공적인 CEO가 됐다. 건축사 면허와 건축시공기술사, 건설안전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도 갖고 있다.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도 쓴 고 회장은 2003년 전경련의 경영인 대상, 2007년 장한한국인 경영인 부문상, 2011년 대한민국 경제리더 환경부문 대상을 받았다.

3년 전 문경읍의 주택을 사들여 주소를 옮기고 리모델링한 집에 살고 있는 고 회장은 현재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아세아 그룹의 지주회사인 아세아 주식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벌써 일선에서 물러날 법도 하지만 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뛰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출근하고 금요일은 문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회사에 더욱 열심히 일해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밤늦게 까지 인터넷 검색이나 학구열을 불태운 탓에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좋아하던 골프도 3년 전 그만뒀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사람 얼굴도 흐릿하게 보여서 행사장에서도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으려 한다. 누군지 몰라서 인사를 못하는 실수가 두렵기 때문이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그에게는 각각 2명씩 4명의 손자가 있다. 가까운 곳을 다니는 여행이나 등산이 취미다. 독서는 당연한 일상이니 취미는 아니다.

오늘도 그는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경영인으로 뛰고 있는 현역 CEO이자 마음은 활력 넘치는 청춘이다. 특히 고향 문경을 지극히 사랑하는 ‘문경사람’이다. 그래서 올해 문경시의 ‘문경대상’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20년 11월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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