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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유정(四佛有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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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16일(금) 16:4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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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법무사 정창식사무소 대표 | ⓒ (주)문경사랑 | | 설 연휴 안해와 함께 산을 올랐다. 젊은 시절에는 휴일을 거의 산과 함께 했었다. 그때는 산악회에서 산행 안내를 맡아 전국의 산을 들고났었다. 그렇기에, 산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가까이 있는 친구처럼 느끼고 있다.
살펴보면, 우리 지역은 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역사적 또는 지리적, 생활 문화적인 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한양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는 초입은 강과 계곡 그리고 평야가 아닌 산이 된다.
조령(鳥嶺)은 높고 험준한 산의 대명사이다. 그 조령을 넘어야 비로소 우리 지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삼국시대의 하늘재도 마찬가지다. 하늘재는 수사적(修辭的) 표현으로 ‘하늘과 맞닿은 고개’ 등의 의미로 이해되는 듯하지만, 어원적으로는 대원령(大院嶺)이라는 옛 한자음의 소리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표 아리랑 중의 하나인 ‘문경새재 아리랑’도 문경새재 주흘산을 중심으로 생활 노동요로 활발하게 불리워졌다고 한다. 이는 문경새재 아리랑 소리꾼인 송영철 옹의 회고에도 적혀 있다.
“젊은 시절 곶감을 팔기 위해 새재를 넘어 수안보 장을 보러 가면서 즐겨 부르곤 했었어.”
그는 산 아래 마을 하초리에 살며 저 ‘문경새재아리랑’을 즐겨 불렀다. 아리랑은 고갯길을 넘을 때에만 불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높고 험하기로 이름난 마을 뒷산인 주흘산을 수시로 들고 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랑을 소리높여 불렀다.
그런 산들의 시작이 우리 문경일진데, 더 많은 산의 문화가 지역에는 산재해 있음이 분명하다. 그 대표적인 곳이 산북이다. 산북(山北)은 산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 산이 월방산(月芳山)임을 이제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호계마을은 산서(山西)면이라 불렸다. 산동(山東)과 산남(山南)은 지금의 산양 즉, 금천을 기준으로 나눴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지역민들이 돈달산을 의지하듯 월방산은 옛사람들의 의지와 기도처였다. 지금도 월방산에는 사찰이 서너 곳 있고 불교 유적과 폐사지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산, 아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산은 사불산이다. 사불산은 공덕산(功德山)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공덕(功德)은 불교 경전인 법화경을 상징하는 명사이다. 법화경은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덕(功德)에 대한 가르침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덕산에 들어앉은 대승사(大乘寺)는 법화경의 성지가 되는 사찰이 된다. 대승사 창건 설화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염불하는 이름없는 스님이 죽어 두 개의 연꽃(雙蓮)이 무덤에서 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때의 경(經)이 법화경이다.
그러고 보면, 화엄경의 성지인 영주 부석사에서 넘어온 목불탱화가 법화경의 성지인 대승사의 대웅전에 모셔져 최근에 보물로 승격된 것은 그 위상에 걸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불산의 상징은 무엇보다 사면에 부처가 새겨진 사불바위이다. 휴일 안해와 찾은 사불산은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힘겹게 오른 사불바위에서 천년 사찰 묘적암을 바라보았다. 고려말 나옹화상에서부터 근대불교의 대선사였던 경허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옹, 법전스님과 선승이었던 청담, 일타스님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큰스님들의 수행의 적정처가 저 묘적암이었다.
그 묘적암에 스님 한 분이 정진하고 있다. 그 묘적암을 바라보고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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