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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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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09일(화) 17:35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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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법무사 | ⓒ (주)문경사랑 | | 모란(牧丹)은 ‘꽃중의 왕’이라고 한다. 그 모란꽃이 우리 집 마당에서 꽃을 피웠다. 몇 년 전에 심었는데 4월 초부터 심상치 않더니 기어코 망울을 터트렸다. 그리고 곡우(穀雨)가 되기 전 활짝 꽃을 피웠다. 모란은 곡우 즈음에 핀다고 해서 곡우화(穀雨花)로 불렀다.
꽃색은 분홍이었다. 꽃잎은 크고 화려했다. 가늘고 귀티나는 엷은 분홍색 겹잎들이 노란 암술과 수술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화려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화려함은 장미가 으뜸인데, 모란은 그 화려함을 넘어선 기품있는 부귀(富貴)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직접 모란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몇 번을 다시 보곤했다.
모란은 신라 진평왕 대에 당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당나라 사람들은 모란이 피었다고 하면 “만 마리 말과 천 대의 수레로 모란을 보러 간다”고 할 정도였다니 그 사랑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당나라 사람만이었을까. 우리나라의 시인 김영랑은 그의 시(詩)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의 낙화를 보고 결국 상심하고 말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사실, 모란은 그림과 사진에서 적잖게 보아왔었다. 그때의 모란은 다른 꽃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처럼 다가오지 못했었다. 그러나, 우리 지역 출신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33호 자수장 김시인 선생의 모란도(牡丹圖)는 달랐다. 하나하나 손으로 수(繡)놓은 꽃색의 농염(濃艶)한 표현은 감탄이었다. 문인화가 심천 이상배 선생의 작품 ‘모란’에서는 한국적 화려함의 극치가 느껴졌다.
봄꽃이 차례로 피어나는 것을 옛사람들은 ‘춘서(春序)’라고 했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춘풍(春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연의 질서를 이르는 말인데, 요즘은 이 말이 정말 무색하다. 더구나 올해에는 더욱 그렇다. 가장 먼저 피는 매화 이후 마당의 동백과 반재이의 벚꽃은 별 차이가 없었다.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앵두, 모과, 연산홍, 매발톱꽃들은 거의 같이 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4월 20일을 전후하여 곡우 즈음에 피어 준 저 모란은 고맙고 감사했다. 얼마 전 모란이 졌다. 낙화 뒤의 허전함과 슬픔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인 영랑은 특별했던 모양이다. 그는 모란이 진 것을 보고 울고 말았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안타깝게도, 영랑의 집 마당에는 작약이 없었던 모양이다. 모란이 떨어지고 나면 작약이 핀다. 작약은 모란과 구별이 쉽지 않은 꽃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이리저리 봐도 아름답다는 표현을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 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작약이 모란의 아름다움에 비견되었던 모양이다.
그 작약이 집 마당 한켠에서 조심스레 망울을 맺고 있다. 오늘 아침 부푼 꽃망울을 보고, 시인 영랑의 표현처럼 작약꽃을 기대하는 내 보람이 뻗쳐 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모란은 모란대로 그 아쉬움은 정말 크다. 그래서 시인 영랑의 시로써 그 슬픔을 위로받을 수 밖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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