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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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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28일(금) 16:3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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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법무사 | ⓒ (주)문경사랑 | | “한번 읽어보세요.”
어느 날, 운강 이강년 기념사업회(회장 이영범)에서 사무국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황용건 씨가 찾아왔다. 그는 박열 열사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학위 논문으로 ‘문경 한두리의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등 지역 역사학계에서 주목할만한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준 책은 ‘운강 이강년 선생’의 스토리 평전이었다. 책을 지은 이원혁 작가는 방송 PD로 일하면서 많은 역사 다큐멘타리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을 알리는 방법으로 ‘스토리 평전’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운강 선생은 우리 지역 가은 완장리에서 출생하여 구한말 구국의 일념으로 의병을 일으켜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선생은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은 인물의 면면을 보면, 김구, 안창호, 안중근, 신익희, 손병희 등과 같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너무나 뚜렷한 공적을 남긴 분들임을 알 수 있다.
책은 단락마다 인물과 비교되는 유사한 국내외 사례들을 먼저 서술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게 한 후, 인물의 실제 이야기들을 실었다. 그리고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형식이었다.
“잠깐! 이게 뭐야!”
이 책의 제목인 ‘세상을 품은 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첫 단락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운강 이강년 의병장에 대한 기록의 출처는 상당부분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에서 비롯되었다. 이 기록물은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강순희 선생이 장군의 사후 약 10년 뒤인 1916년에 운강 이강년 의병장과 의병 부대의 활동을 정리 완성한 것이다.
일제의 눈을 피해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세운 강당인 박약재(博約齋)의 지붕 기왓장에 책을 숨겨두었다. 그런데 해방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지붕공사를 하다가 인부에 의하여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고 한글이라는 디지털 글자를 발명한 ‘기록의 민족’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기사도(騎士道)와 신사도(紳士道)와 비교하여 의병들이 보여주었던 정신을 의병도(義兵道)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당시 의병의 가치를 새롭게 높이고자 하였다.
막강한 일본군을 상대로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강년 선생은 고종황제로부터 국가비상시 총사령관격인 도제찰사(都體察使)에 임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선생의 전공과 전과는 무과 출신으로서 연마한 실력과 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과 포용의 리더십 그리고 구국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탄환의 무정함이여/ 발목을 다쳐 나아갈 수 없구나./ 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을.”
장군은 1908년 7월 청풍의 까치산 전투에서 장맛비 속에 격렬하게 싸우다가 발목에 총을 맞아 더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몇 달 뒤 순국을 맞이한다.
“시민들의 뜻을 모아 운강선생의 이름으로 도로명을 지었으면 해요.”
운강 이강년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서 마땅한 바램인 듯했다. 작가도 대한민국에 ‘운강로’라는 거리 이름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책의 끝에 이렇게 적었다.
“.… ‘이강년 거리’나 ‘운강로’를 걸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래, 분명 그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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