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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2023년 03월 21일(화) 17:33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법무사

ⓒ (주)문경사랑

 

뒤뜰의 산수유가 바쁘게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날의 저녁, 안해와 함께 골목길을 걸었다. 문화예술회관 언덕 뒤에 있는 처가(妻家) 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를 부를게요.”

택시를 부르겠다는 처남의 권유를 마다하고 처가(妻家)를 나온 터였다. 택시를 타고 처가(妻家)에 왔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택시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점촌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문경여고 쪽으로 걸어갔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금방 여고 앞에 이르렀다. 담장의 벽화 그림이 익숙한 풍경으로 지나갔다.

문득 처가에서 집으로 가는 이 길이 무척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큰길에 이르면 우리 집은 얼마 남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밤이었지만 저 어둠 너머에 처갓집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처갓집이 가깝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차량으로 다니면서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풍경에 감정이 무디어졌던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장인어른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한 번은 당신들의 집을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들은 혼인의 연(緣)으로 맺어져 걷게 되는 이 길을 걸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설렘과 연민 그리고 염려의 마음으로 발걸음이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안해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미의 표정이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처가가 있는 모전동과 친가가 있는 점촌1동의 거리는 걸어서 십 분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먼 길인양 지내왔다. 안해는 함께 살면서도 사실은 온전히 나와 함께 있지만은 않았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의지가 되어야 했고 지금은 병중에 있는 어머니가 그미를 힘들게 하고 있다.

“가능하면 친정에는 자주 가지 않으려고 해요.”

안해는 결혼 초에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그 말을 지키려고 애써왔다. 그것은 우리 가족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려는 그미의 뜻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 또한 처가를 멀리하려고 했다. 늘 처가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대했다. 그런데, 지금 처가와의 거리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당혹스러우면서 새삼스런 마음이 들었다.

집이 가까워 오면서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이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평소에 지나쳤던 풍경들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변화된 집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의 골목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세계 4대 성불 중 한 사람인 틱낫한 스님은 평화운동가이면서 명상가로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 초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행을 가르쳤었다.

그의 저서 ‘포옹’에서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였다.

“삶의 기적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기적을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 주변 도처에서 느낍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산, 강, 숲, 꽃,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진정한 기적입니다….”

어쩌면, 안해와 걷는 이 길에서 느끼는 ‘지금 여기에서’의 마음이 작은 기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멀기만 느껴졌던 처갓집과의 거리가 사실은 정말 가까웠음을 깨닫게 되는 정말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적 말이다.

안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거칠어진 손을 잡고 싶어졌다. 경칩을 앞둔 밤 하늘에 둥근 달이 그런 우리 둘을 비추고 있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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