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도배를 하면서
|
|
2023년 02월 10일(금) 16:36 [주간문경] 
|
|
|

| 
|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법무사 | ⓒ (주)문경사랑 | | 좋은 볕들이 마당에 옹기종기 모였다. 정원의 나무들이 그 볕과 함께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추운 겨울 미루었던 마른 가지들을 정리하려고 마당에 나갔다. 연산홍을 덮었던 시든 국화 줄기를 자르니 밑에 새로운 국화 싹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튤립도 푸른 촉을 일부 내밀고 있었다.
등껍질에 푸른 이끼가 붙은 감나무는 아직 깊은 겨울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감나무 아래에 백합과 하늘말나리, 범부채꽃, 원추리와 붓꽃들이 요란스레 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조심스레 낙엽을 들추었더니 생기 머금은 붉은 백합 뿌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수돗가 담 밑에는 명이나물이 싹을 틔우는 중이었다. 조만간에 마당은 꽃동산을 이루어 낼 것이 분명하다.
문득, 우리 지역의 시인 권영하 선생(점촌중학교 재직)의 시조가 떠올랐다. “도배를 하면서”라는 시였다. 202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아마도 시인은 봄을 맞이하면서 예쁜 꽃무늬 도배지를 바르려고 했던 모양이다.
“악착같이 붙어 있는 낡은 벽을 뜯어내고/ 벽지를 살살 풀어 재단해 붙여보면/ 꽃들은 뿌리내리며/ 벽에서 피어난다 …”
그랬다. 어느 사이 봄은 낡은 벽 같은 겨울을 헤집고 벽지를 살살 풀어 재단하듯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봄볕은 도배지의 꽃이 벽에서 피어나듯 얼은 땅을 헤집어 꽃이 될 싹을 틔우도록 한다.
감나무 맞은 편에 서 있는 홍매화 나무를 보았다. 가지에 맺힌 올망졸망한 망울들이 좀 더 단단하고 붉어진 듯했다.
시인은 시조의 중장(中章) 즈음에서 도배하는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때 묻고 해진 곳에 꽃밭을 만들려고//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오른다/ 흉터를 몰래 감싸고/ 생채기를 보듬으며 …”
아마도 시인이 바르는 도배지에는 꽃무늬가 가득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흉터 지고 못생긴 벽에 새로운 도배지를 바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직벽도 척추 없이 단번에 기어올라/ 천장에 땀 흘리며 거꾸로 매달려도/ 서로를 응원하면서/ 깍지 끼고 버틴다 …”
도배지라는 게 그렇다. 바르는 일이 힘들지만 일단 도배지를 발라놓으면 도배지는 벽에 붙기 위해 스스로 치열하게 버틴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더라도 그렇다. 그렇게 도배가 완성되듯, 마당의 홍매화도 오늘처럼 봄볕을 받아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치열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조의 종장(終章)에서 시인이 이렇게 노래하듯이 말이다.
“보일러를 높이거나 햇빛살 들이거나/ 실바람 끌어다가 방 안에 풀지 않아도/ 팽팽히 힘줄을 당겨/ 꽃동산을 만든다.”
그러나, 도배지가 팽팽히 벽에 붙어 스스로 도배를 완성한 듯 하지만 온전히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게 도배지가 벽에 붙어 꽃동산을 만들 때까지 시인이 수고한 일들은 참으로 많다. 그것은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와 같은 이치이다.
오늘의 봄볕들로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은 힘을 얻어 곧 꽃을 피울 것이 분명하다. 그때를 조용히 기다려야겠다. 그사이에, 행여 오래되어 낡고 헤진 도배지를 떼내어 꽃동산을 만들어야 할 방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겠다.
참, 시인은 농민신문과 강원일보,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에 이어 올해 네 번째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다고 한다. 시와 동시 외에 시조로는 두 번째라고 한다. 우리 문경의 경사임에 지면을 빌어 축하한다.
|
|
|
|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주간문경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간문경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