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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반(生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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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화) 16:27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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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책을 읽다가 어느 글에 멈추었다. 그것은 ‘생반(生飯)’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중국 당나라 때다. 절에서 살림을 맡은 원주스님이 생반 -식사하기 전에 절밥을 떼어 짐승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모은 밥- 을 들고 늘 새 모이를 주던 바위로 걸어갔다. 그때 바위에서 기다리던 까마귀 떼가 후다닥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 그걸 본 선사(禪師)가 이렇게 물었다.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가는데 까마귀들이 왜 날아가 버리지?”
원주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가 무서운가 보지요.”
그 말에 선사는 정색을 하고 꾸짖으며 원주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것은 생명을 해치려는 마음이 너에게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게 수행자의 자세야.”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으로 나가 언제나처럼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절밥을 먹기 전 조금씩 떼어 이를 모아 짐승들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생반(生飯)이라고 한다는데, 지금 십수 년째 매일 하고 있는 이 일은 헌식(獻食)의 일종이다.
묵은 쌀을 마당에 흩뿌리면 나뭇가지 위에서 기다리던 새들이 반응을 한다. 그런데, 내가 있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현관 안으로 들어와 밖을 보면 그때서야 모이를 먹는 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때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모이를 줄 때도 있다. 그때도 내가 있으면 절대 다가오지를 않는다.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보려 하면 새들은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늘 궁금했었다. 왜 십수 년 동안 변함없이 자신들에게 모이를 주는 데도 저렇게 경계를 하는 걸까. 때로는 야속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지금 저 선사의 말처럼 생명을 해치려는 마음이 내게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간혹, 스마트폰의 동영상에서 어느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스님일 수도 있다)의 손바닥 위에 있는 모이를 먹는 새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그렇다면,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같은 상황이면서도 나와 다른 것은 저 선사가 원주에게 한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책에서 선사는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항상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해. 세상은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고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아. 내가 남을 의심하면 그 사람도 나를 의심하고…. 내가 이해득실 따라 사람을 가리지 않으면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제 발로 다가오게 되어 있어.”
그래, 세상은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고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다는 선사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내가 주는 만큼 받게 되고 미워하는 만큼 돌려받게 되는 우리 삶의 철리(哲理)가 저 선사의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우리 지역 출신의 대표적인 서예가 소사 채순홍 선생에게 글씨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글씨는 일반적인 순서를 벗어나 시계반대 방향으로 쓴 회문(回文)인데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글귀이다.
“산명곡응(山鳴谷應)”
중국 송대의 문인인 소동파의 후적벽부에 나오는 글귀로 ‘산이 울면 골짜기가 화답한다’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이치를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에 비유한 선사의 말과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기도 하다.
어찌됐던, 저 생반(生飯)의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겪는 일들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헌식(獻食)을 통해 산명곡응의 이치를 깨닫고 있다. 더불어 어느 때에 새들이 모이를 주는 나를 경계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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