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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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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16일(금) 11:19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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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추석날 제사를 마치고 성묘를 했다. 오래 전, 산양면 마내(兄川)마을 언덕빼기에 밭을 마련하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자리에 모셨다. 그리고 밭 한켠에 작은 감자밭을 일구었다. 몇 고랑 되지 않았지만 감자 짓는 일로 가끔씩 아버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했다. 어느 날 큰아들이 시(詩)를 썼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목은 ‘감자’였다.
“할아버지 무덤가에/ 감자밭을 일구었다.”
큰아들 휘재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무심히 감자를 심었던 일이 아이에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일까. 아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시(詩)로 표현했다.
「감자 하나를 심을 때/ “할아버지 저 중학생되었어요.”
감자 둘을 심을 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의 시를 접하면 시적(詩的) 표현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이오덕(李五德) 작가가 추천한 아이들의 동시를 보았다. 시를 보았다고 쓴 것은 그가 추천한 아이들의 시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기 때문이다.
이오덕 시인은 1970년 초, 산북면 김룡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아이들의 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6학년 학생이었던 이후분 어린이가 쓴 ‘아기업기’라는 시이다.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자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는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이 시에는 하루 종일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힘들어 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충분히 전해온다. 그렇게 방심하듯 마지막 연에서 무언가 도끼를 맞은 듯한 반전의 표현,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라는 싯구(詩句)와 마주한다. 그때 “시는 이렇게 써야 해!”라고 절감한다.
이오덕 시인은 1925년생으로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가 고향이다. 출생년도의 끝 자리 수와 고향 덕계리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오덕(五德)으로 지었다고 한다. 덕계리에는 그를 기리는 ‘이오덕 작은 문학관’이 있다. 그는 우리말에 대한 사랑으로 글쓰기에 평생을 바친 동시작가이다. 그가 쓴 ‘우리글 바로쓰기’는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몽실언니’, ‘강아지똥’을 지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과의 나이를 초월한 30년간의 교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소의 눈은 참 크다/ 두 눈을 보면 참 착하게 보인다
소는 참 착한가 보다/ 소가 사람이 되면 이 세상은
다 착한 사람이 될 거다”
경기도 광명의 심석초등학교 2학년 ‘성유리’ 어린이의 시다. 우리가 아는 가수이다. 이 시는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시인의 책에서 소개되었는데, 그는 이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글은 줄글로 썼지만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름 앞에 적힌 2학년을 지우고 이 글을 보여서, 이것은 유명한 시인의 시라고 소개해도 감동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크게 칭찬하였다.
순수한 아이들의 시는 어른들에게 걸림 없이 전달되고 크고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 성묘를 하면서 큰 아들 휘재가 쓴 시(詩)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아이가 쓴 ‘감자’의 마지막 시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감자 셋을 심고/ 넷을 심을 때 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내 마음/ 감자로 대신했다.”
추석에 뜬 보름달은 크고 참 둥글다. 아들의 시 한편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이제 고이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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