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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봄

2022년 03월 11일(금) 16:36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날씨가 풀렸다. 따뜻한 볕들이 창문으로 들어와 거실바닥을 채웠다. 그 볕에 얼굴과 등을 부비다가 바깥으로 나갔다. 온전히 몸으로 봄볕을 맞이하고 싶었다. 17세기 우리 지역의 유학자 김해는 자신의 호를 부훤당(負暄堂)으로 지었다. 부훤(負暄)은 겨울날 등에 내리는 따뜻한 볕을 일컫는 의미인데, 그 글 뒤에 당(堂)울 붙였으니 아마 자신이 거처하는 집의 이름으로도 사용했을 수 있다.

한겨울에는 잠시에 불과한 그 볕이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아직 마당은 겨울에 더 가깝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 촉과 싹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튤립이다.

지난 가을에 심은 자리마다 튤립 촉들이 올라왔다. 나란히 정렬된 튤립들은 봄을 가장 기대하게 하는 꽃이다. 안해가 심은 양귀비들도 석류나무 밑에서 촉 하나를 틔우고 있다. 지난 해 심었던 수선화도 마찬가지다. 여러 촉들이 곳곳에 올라오고 있었다. 낙엽들을 손으로 걷어내니 매발톱의 여린 잎들이 모양을 갖추는 중이었다.

텃밭으로 갔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로 덮혀진 땅에는 갖가지 푸른 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봄나물인 달래는 며칠 전 안해의 부지런함으로 된장국에 넣어 맛보았다. 곧 취나물과 참나물도 보일 것이다. 십여 년 전 강릉에서 옮겨 심은 울릉도 ‘명이나물’은 더 빨리 나타날 것이다.

그때, 생각나는 꽃나무가 있었다. 두 해 전 이웃의 이 선생으로부터 분양받은 능소화였다. 그 집 담장을 예쁘게 장식했던 능소화는 늘 주암정보다 늦게 졌다. 그래서 주암정 능소화를 아쉬워하던 나에게 이 선생네 집 능소화는 위로가 되었다. 몇 해 전 여름에 부탁하여 가지를 몇 개 잘라 심어두었는데, 작년에 잎들이 돋았다. 더 자랐다. 부근을 살폈다.

담쟁이넝쿨처럼 줄기 하나가 담벽에 붙어 쉬고 있었다. 아직 작지만 꽃을 피울지 모른다. 이 선생에게서 분양받은 다른 꽃나무가 또 있다. 노란색 꽃들이 가지에 가득피어 마치 봄을 맞이하듯 하여 붙여진 꽃, 영춘화(迎春花). 매화꽃과 같이 피어 황매(黃梅)라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가지에 망울이 올라 온 것이 보였다. 이번 봄에 꽃을 피었으면 하지만 욕심일 듯 하다.

이렇듯 겨울의 혹독한 고난을 이겨낸 생명들이 표현하는 모습들은 늘 경이롭다. 그러고 보면, 아직 계절을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서툴고 낯선 풍경들이다.

문득, 그 모습을 보고 나태주 시인의 “어린 봄”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지금과 같은 봄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린 봄은 나뭇가지 위에/ 새 울음 속에 / 더 어린 봄은/ 내 마음 위에….”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아직은 어린 봄이다. 좀 더 주변을 살펴야 나뭇가지와 푸른 촉, 여린 잎에서 봄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가득했던 볕들도 어느새 반으로 줄었다. 그때 거실 한쪽에 있던 다판(茶板)이 눈에 들어왔다. 다판 두 개를 얹어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게 하였는데, 언제부터 높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바깥과 단절된 거실은 아직 봄이 멀다. 그래서 거실에 있으면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아직은 내 마음 위에 있는 “더 이른 봄”이다. 불현 듯, 갑자기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봄을 맞이하면서 영춘화 가지에 맺힌 망울을, 겨우내 올라온 튤립과 수선화의 푸른 촉들이 거실에서도 피어났으면 싶었다.

두 개의 다판을 분리하여 나누어 하나로 두었다. 그러자 낮은 다판이 내려앉듯 전과는 다른 편안한 느낌이었다. 다판 위로 볕들이 내려앉아 다기(茶器)들을 덮고 있었다. 보관해 둔 아끼던 차(茶)를 꺼내어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느새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다. 그때, 어린 봄이 거실로 들어왔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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